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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12. 2023

쉬운 정답

에세이

영화 박쥐에서 주인공 상현은 음탕한 생각이 들 때마다 리코더로 허벅지를 때린다. 생각해 보면 꽤 재밌는 대목이다. 왜 우리는 마음이 저지른 죄를 육체에게 물을까? 말을 안 듣고 떠든 아이에게 우리는 체벌을 가한다. 말을 안 듣고 떠드는 건 마음의 문제지, 육체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기독교의 세계관은 이원론적이어서 육체를 정신, 영혼과 분리한다. 그런데 마음이 저지른 정욕의 문제를 왜, 육체가 지어야 하는가? 인간은 왜 육체적인 고통을 참는 일은 '신성'한 일로 여기는가? 이 질문은 아마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곰곰이 따져보기로 한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84일 동안 빈 손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85일째에 아주 큰 청새치와 씨름하는데, 온몸을 다 바쳐 싸운다. 그는 죽음에 가까운 고통과 사투하며 극복한다. 노인은 왜 신성한 사람이 되는가? 노인은 왜 '유산'을 남기는 사람이 되는가?


정신과 생각, 영혼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육체에 귀속된다. 우리는 육체에 종속된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다. 둘은 상호작용하며 인과가 뒤섞여서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 사이에 비선형적인 존재가 된다. 비선형적 존재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은 모순을 싫어한다.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와 같은 결론이 딱히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을 분리했을 때 생기는 장점은 하나다. 어느 하나로 결론짓기가 쉽다는 거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에서 영육의 분리는 결과를 쉽게 나타낼 수 있다. 어느 하나를 정답 혹은 오답으로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점 때문에 육체와 정신을 분리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무의식 중에 처리해야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뇌 속에 감별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 꼭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 중에 아주 빠른 속도로 낙인을 찍는 감별사가 있지 않은가? 쉽게 정답을 내리는 사회는 곧 전체주의 사회가 된다.


전체주의 사회는 통제하기 쉽고 편해 효율적이다. 동북아 3국 중 가장 민주적인 국가지만 가장 폐쇄적이고 전체주의 성향을 띠는 국가는 오히려 한국이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효율을 추구한다. 효율적인 세상은 빠르게 선택을 해야 하고 빠른 선택에는 쉬운 정답이 있어야 한다. 1+1=2에 의문부호는 없다. 가끔 오류가 생기더라도 그건 효율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일이다.


육체와 정신의 합일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비선형적이어서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인과가 뒤섞인 상태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하다. 정답이 없기에 통제하기가 어렵다. 통제가 어려운 대상은 배제된다. 그래서 양극단으로 치우친다. 정신의 문제를 육체적 가해로 다스리려고 한다. 반대로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이는 신성하다. 이겨내지 못하는 이는 부도덕하다.


우리는 불안하다. 그래서 죄를 꼭 어느 한쪽에 뒤집어 씌워야 한다. 분리하고 뭐가 잘못 됐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쪽을 처벌하면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마치 자해와 비슷하다. 누군가가 날 해치기 전에 스스로를 벌한다. 그러면 불안이 해소된다. 불안이 큰 사회일수록 죄를 뒤집어 씌운다. 판단이 빠르다. 정답을 빨리 내린다. 히틀러는 쉬운 정답을 내렸고 독일인들은 그 정답에 쉽게 따랐다.


진정으로 신성한 것은 무엇인가? 나도 모른다. 이렇게 살면 죽기까지 정답을 미루게 된다. 유예하고 유예할수록 세계는 복잡해질 것이다. 복잡한 세계에 살아야 더 많은 문이 열린 상태로 살 수 있다. 그래야 화재가 났을 때 더 빠르게 탈출할 수 있다. 닫힌 문은 당신을 질식시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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