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이겨내리라
결혼은 과연 정서적 안정의 발판이 되어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동경하며 새로운 삶의 전환점으로 삼고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결혼 생활이 불안과 갈등을 극대화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 대한 수많은 예술 작품이 사랑과 동반 추락을 함께 그려내는 이유도, 결혼이라는 이름 안에서 이미 각자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 얽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첫 인간으로 묘사되는 아담과 하와가 이미 불화로 시작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마치 결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높이 오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추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결혼은 아무리 아름다운 서약 위에 맺어진 사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가진 본질적 불완전함으로 인해 비극적인 순간을 맞닥뜨릴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불완전함은 여러 근원에서 비롯되지만, 가장 흔하게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트라우마’나 ‘과거 가족 환경’에서 기인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가장 기피해 왔던 부모의 모습을 배우자에게서 보게 되는 순간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영화〈결혼 이야기〉에서 부부가 극심한 갈등 속에서 결국 꺼내드는 말도 ‘부모’에 대한 비난이다. 부모를 통해 학습한 감정적 반응, 관계 방식을 우리가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는 자각은 충격적이면서도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된다.
결혼은 두 개의 불완전한 삶이 합쳐지는 하나의 관계다. 각자의 결핍이나 결함이 자동으로 상쇄되어 ‘완벽한 세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과 결함이 상호작용하며 때로는 새로운 문제까지 만들어낸다. 어떤 사람은 가정 안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보고 자라왔고, 또 다른 사람은 특정한 애정 표현이나 소통 방식을 배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이런 환경의 차이와 학습된 트라우마가 결혼 생활 중에 사소한 문제부터 심각한 갈등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특히 누군가가 “내 아빠(혹은 엄마)의 최악의 모습을 배우자에게서 보았다”라고 느끼는 순간, 그 상처는 곱절이 된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배우자가, 결국은 내가 모범으로 삼고 싶지 않았던 부모의 모습을 되풀이한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 자신 역시 부모와 똑같은 행동 방식을 답습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더욱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결혼은 ‘정서적 안정’보다 오히려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가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는 말만 하고 끝내기에는 이 제도 혹은 관계가 갖는 가치와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결혼 생활은 애초에 구원자와 피구원자의 만남이 아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부족함을 메우고, 더 나은 모습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여정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 경험이 때로는 결핍이지만, 동시에 ‘나는 폭력적인 방식만큼은 답습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재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정환경이 달랐던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에게서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사랑과 소통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즉, 결혼이라는 공동체는 본래 불안정한 개인들을 더 단단하게 묶어줄 수도, 깊이 파고드는 트라우마를 재연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떤 쪽으로 흐르느냐는, 결국 서로가 얼마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인지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눈부신 구원은 아니어도, 함께 부딪히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장기적 과정이 결혼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결혼하면 더 안정적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종종 본다. 그러나 배우자는 구원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일 뿐이다.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서적 상처와 자라온 환경을 완전히 지워주기보다는, 그런 상처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함께할 파트너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게 보면 결혼은 더 이상 “정서적 안정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안과 안정 모두를 맞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동행”이 된다.
결국 결혼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뿌리 뽑아 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을 확인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려는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각자 다른 형태의 상처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결혼이 비극이 될 수도,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배우자란 내 인생에서 나를 보완해 줄 ‘또 다른 나’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경험의 차이 속에서도 ‘함께 나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론 결핍을 보완하지 못해 더 큰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때론 배운 적 없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시도해 보며 한 단계 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결혼이 품고 있는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