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연애 시장에 뛰어들면, 인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장기적으로 '좋은 연애', '좋은 결혼'을 하고 싶은 보수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옹졸함은 버리는 것이 낫다.
연애에 있어서 등가교환을 원하는 사람들은 "널 이만큼 사랑해서, 널 위해서 이렇게"라는 말을 붙인다. 하지만 그 문장에는 '나'라는 주어가 빠져있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해서, '내'가 널 위해서, 결국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받을 것을 기대하고 행동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집착으로 느껴져 금세 지치게 만든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너도 이만큼 해야 돼"라는 말은 사랑의 본질을 흐리는 족쇄와 같다.
이는 사랑이 단순히 감정의 교환을 넘어선, 더 깊은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등가교환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공정한 거래를 의미하지만, 사랑은 때로는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헌신하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에드워드는 히로인 윈리에게 "내 인생의 절반을 줄게"라고 고백한다. 등가교환을 중시하는 연금술사의 세계관다운 고백이지만, 윈리는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주겠다고 답한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덕후인 나는 이 대사가 '환승연애'에서 언급됐을 때 아내에게 똑같이 말한 적 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만화를 본 적도 없는 아내는 망설임 없이 "내 인생의 전부를 줄게"라고 답했다.
나 역시 아내에게 내 삶의 전부를 주기로 했다.
사실 아내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내심 미안했다. 그래서 아내와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내 시간과 낭만을 모두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취미와 친구들을 잠시 멀리하고, 알고 있는 모든 낭만적인 구절을 편지에 담아 끊임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처가에 더 자주 들러 아내가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집안일도 더 많이 분담한다. 가끔 피곤할 때는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내가 한 일의 양만큼 상대방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사이에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것은 대가 없는 사랑의 결과다.
연애와 결혼을 비교선상에 놓기 시작하면, 수치화하게 된다. 내가 한 일을 보여주고 싶고, 티 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그건 온전히 내 마음일 뿐이고, 상대를 위해서는 아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측량할 수 없는 수준의 마음을 내주는 것.
가정은 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계약 관계와는 달라야 한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반반'이라는 계산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등가교환을 요구하더라도, "내 전부를 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깨뜨린다. 아니, 깨뜨려야만 한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 없이, 내 전부를 주는 사랑.
연애 시장에 뛰어들면, 조급해지는 마음은 이해된다. 말 그대로 '시장'에 뛰어들었으니까, 재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경쟁 구조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이미 뛰어들었다면, 마음 먹고 모든 걸 내줄 수 있어야한다.
그렇다고 호구가 되란 말은 아니다. 내 마음을 깨부수면서, 사랑을 해선 안된다. 감당할 수 없는 헌신을 미끼처럼 던져 놓고, 그 대가를 바라는 낚시꾼이 되지는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