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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2. 2022

영화 맥베스 선택적 리뷰, 해석

*이 리뷰는 개인적 소감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파기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레이디 맥베스의 상실로부터 시작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눈물을 흘리고 맥베스는 아이의 시체를 화장한다. 감독은 이 장면을 시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말하고 있다. 이 장면만으로도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를 다채롭고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한다.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이 고전 비극이 두 인물이 자식을 잃는 비통과 상실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전주인가?


 곧이어 맥베스는 소년병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가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전투 중 죽어버린 소년병의 시체를 벤쿠오와 함께 거두는데 이 소년의 환영이 계속해서 맥베스에게 나타난다. 이 소년의 환영은 첫 장면에서 맥베스가 화장한 갓난아기와 같다. 맥베스가 직접 죽은 소년병의 시체 눈 위에 돌을 얹어줌으로써 그 상징은 완성이 된다. 그러니까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둘의 아이는 요절한 지 꽤 된 것이고 그 이후로 둘 다 아이를 갖지 못한 채 세월이 꽤 지난 시점에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아들이 장성해서 전투에 나갔을 때를 맥베스는 계속해서 떠올리는 것이다. 영화에서 맥베스뿐만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에게도 아기는 가장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는데 레이디 맥배스가 맥더프의 부인과 자녀들이 죽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이어서 마지막 죽기 전 독백을 하고 죽은 아이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두 인물에게 첫 장면에서의 상실의 의미가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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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인물은 맬컴과 맥더프 두 사람이다. 맬컴은 던컨 왕 시해를 목격하고 맥베스로부터 달아나 사라지고 후에 나타나 간접적인 복수를 성공하고 맥더프는 맬컴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의 몰살을 듣고 후에 맥베스에게 직접적으로 복수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가족을 잃는 사람은 반드시 복수한다.라는 장치가 있다면 맥베스 역시 가족을 잃었기에 복수를 완성시킨 것일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원작에서 마녀들의 예언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마녀의 예언을 기점으로 모든 비극이 촉발되고 결정적으로 맥베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역시 마녀의 예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단순히 마녀의 예언으로 촉발됐다기 보단 이야기를 살짝 비틀고 다른 각도로 보려 한다.

 원작에서 던컨 왕은 품성이 온화하고 자애로워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선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이미지로나마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그 이미지가 자신을 배신한 코더의 영주를 직접 활로 쏴 죽이는 장면과 연회 자리에서 소리를 작게 지르는 장면뿐이지만 나는 사실은 던컨 왕은 스스로의 왕위를 지켜내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만드는 장본인이지 않나?라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왕은 왕이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복수의 씨앗을 심는 일을 충분히 하고 있는 인물이다. 맥베스와 벤쿠오는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파견된 봉건 귀족들이고 던컨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가족 중 그 어느 누구도 희생하지 않은 인물이다. 던컨이 맬컴에게 컴벌랜드 공이란 작위를 주는 것(영화에선 왕세자로 책봉)에서 맥베스가 방백을 하는 장면 등이 자연스러운 이유도 그것이다. 맥베스는 '마녀'로 인해 자신의 권력욕이 폭발된 동시에 사실은 내적으로는 복수라는 감정이 늘 도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맥베스가 왕이 된 이후 스스로 복수의 씨앗을 계속해서 뿌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복수의 씨앗은 단순히 여기서 끝이 나지 않고 벤쿠오의 아들 플리언스, 맬컴에게로 까지 향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맥더프의 복수가 끝난 후 플리언스가 등장하고 맬컴과 함께 칼을 가지고 떠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왕위가 지속되는 한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복수와 전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자녀들이 살해당해야 하며 그 반작용은 결국 희생자의 살아남은 가족에게 돌아와 다시금 피의 복수로 돌아가는 것이다. 권력의 주변부에서 살아야만 하는 맥베스 일가에게 권력을 향한 복수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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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스틴 커젤 감독이 그린 레이디 맥베스는 다소 원작 혹은 고전적인 레이디 맥베스라는 캐릭터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레이디 맥베스는 대표적인 악녀 캐릭터로 2010년 BBC에서 만든 맥베스에서 표현된 레이디 맥베스는 레이디 맥베스 역의 정석 중에 하나이다. 작 중에 레이디 맥베스는 마녀와 함께 맥베스의 타락과 몰락으로 유도하는 독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후반부엔 갑자기 몽유병으로 죽어버린다.

 고전 희곡에 악녀로 일컬어지는 여성 인물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보통 레이디 맥베스를 연출할 때 섹시하고 퇴폐적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햄릿의 오필리어와 굳이 비교하자면 굉장히 능동적인 여성 인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작에서의 마녀와 레이디 맥베스로 대표되는 여성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흔한 클리셰 같단 생각이 든다. 왜일까?



 작품 속에서 마녀와 레이디 맥베스는 남성 캐릭터를 유혹하여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게 하는 촉발제, 방아쇠 같은 역할을 한다. 생각해보면 리어왕이나 햄릿에서도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성격만 다르지 비슷한 장치로 사용된다. 원작에서는 세 마녀와 함께 헤카테(해커트)가 등장하는데 헤카테는 그리스 신화에서 마법과 주술을 관장하는 여신이고 동일 신화 속에서 메데이아라는 인물은 헤카테를 섬기는 마녀다. 메데이아는 마녀 중에서 굉장히 잔혹한 마녀로 묘사된다. 이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이야기에서 악녀와 마녀, 주술이라는 이미지는 부도덕한 여성성의 대표 격으로 사용됐다. 외에도 세이렌 등 남성들의 도덕적 타락과 부도덕한 죽음에 여성 인물이 문학적인 장치로써 많이 사용됐다.

 물론 그 외의 경우, 남성이 남성들을 살해하고 부도덕한 일을 하게 만들고 패륜을 저지르는 표현들은 문학 속에 뭐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왜 여성은 마법, 신비주의, 주술 등으로 대표되는 장치로 표현되었을까?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본 작에서 표현된 레이디 맥베스는 악녀라기보다는 슬픔에 잠긴 여성처럼 보인다. 악녀로 묘사된 레이디 맥베스라는 캐릭터는 작품 내부가 아닌 바깥 외부에서 바라볼 때 외려 수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 내부에서 평범한 모성을 가진 한 여성으로 비틀어 보니 그녀의 비통과 상실이 보이고 그녀를 향한 이해라는 작용이 생겨 연민을 느끼게 된다. 지금껏 마녀로 묘사된 여성 캐릭터들의 잔혹함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한 발자국 멀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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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잠.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죽음과 잠이라는 상징은 중요한데 햄릿에서도 죽음과 잠은 동일시된다. 감독은 이 설정을 가져와 약간 비틀어 영화에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둘의 죽음을 마치 잠드는 것처럼 묘사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이했고 맥베스는 맥더프의 결투 끝에 마치 잠이 드는 것처럼 눈을 감으며 스르르 고개를 떨군다. 원작에서 맥베스는 머리가 잘려 맥더프의 칼 끝에 꽂혀 조롱받는다. 감독은 맥베스 일가에게 조용한 죽음, 잠과 같은 죽음을 선물로 안겨준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는 묘사는 상실과 슬픔에 잠겨 그릇된 선택을 했던 인물들의 참회처럼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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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리언스와 맬컴. 영화의 엔딩에서 벤쿠오의 아들 플리언스와 맬컴은 각기 다른 칼을 가지고 사라진다. 플리언스 역시 맬컴처럼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를 위해 맥베스에게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왜 왕의 칼이 두 개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영화 초반 던컨 왕은 자신의 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만지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칼은 후에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엔딩에서 맥베스는 왕의 검을 들고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감독이 던컨 왕과 맬컴으로 위시되는 왕족과 맥베스, 벤쿠오, 맥더프로 위시되는 봉건 귀족들의 의복을 확연히 다르게 했다는 것을 짚어야 한다. 던컨 왕과 맬컴의 의복은 마치 중세 사제처럼 보이게 흰 의복을 하고 있고 맥베스 역시 왕위에 오르고 나면 그런 의복들을 착용한다. 맥베스, 벤쿠오는 영화 초반부 마치 들개의 모습을 한 전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맥베스는 후반부 전투 장면에서 왕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던컨 왕의 칼이 아닌 자신의 칼을 들고 나타난다. 즉, 플리언스는 맥베스의 칼을 맬컴은 맥베스가 왕좌의 던져버린 왕관과 왕의 칼을 가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두 사람은 왜 각기 다른 칼을 들고 사라지는 것인가? 플리언스는 왕위를 이을 자손이라고 예언받았다. 즉 신비주의 왕좌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던컨은 기존 기독교 세계의 왕이기에 맬컴이 그 기존 기독교 세계의 정통성을 가진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야기는 플리언스와 맬컴을 중심으로 지속될 것처럼 끝이 난다.


 중세 신비주의와 기독교의 이질감 역시 이 작품의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면서 중세만의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한층 덧씌워 준다. 감독은 기독교 세계관 중심의 셰익스피어 작품세계 속 숨어 있는 신비주의라는 레이어를 벗겨내 자신만의 해석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다시 덧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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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에 디스토피아적 색채를 입힌 것이 정말 현대적으로 잘 이식됐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퇴폐적이고 섹시한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 중심부에 있는 레이디 맥베스의 캐릭터를 외려 다르게 색칠하고 그 색채를 영화 전반 색감과 연출에 이식한 것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감독은 연출가, 극작가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플 셰익스피어 작품을 이 정도로 각색하고 연출했다는 것만으로 평생의 자랑거리로 가지고 살아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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