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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Dec 03. 2022

곤충 해부와 햄버거 놀이

에세이

내가 어릴 때 애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곤충을 해부했다. 그들은 마치 예술가처럼 다리와 날개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뜯어보고 배를 가르고 ‘우엑’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곤충의 내장을 쏟아내게 만든다. 더 나아가면 다른 계통의 곤충들을 접합하는 외과 수술까지 하게 된다. 불로 지지고 물에 잠수시키고 끓이는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했던 놀이 중에는 또 햄버거 놀이란 게 있었다. 햄버거 놀이는 가학과 피학이 뒤섞여 있는 흥미로운 놀이다. 성인이라면 기절할 만큼의 압력을 받겠지만 가볍고 골밀도가 높은 아이들은 그런 압력을 잘도 견뎌냈다. 누군가가 맨 아래에 깔리면 그 위에 누군가 몸을 던진다. 그는 잠깐 자신의 우위를 느끼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누르기 시작하면서 고통과 즐거움 사이에서 발버둥 친다. 제일 위에 오르는 사람은 강하게 누르려는 욕심을 가지고 여러 번 다시 올라탄다. 아마 나는 가장 윗자리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학과 피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중간 자리 즘이 좋았던 것 같다. 이처럼 인간은 가학과 피학의 즐거움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다. 살아가면서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하지만 모든 선택이 한쪽에 치우치는 인간은 잘 없다. 자유롭게 전환되며 양가의 즐거움을 누린다. 무엇이 인간을 극단적 방향의 가학자 혹은 피학자로 만드는 것 인지애 대해선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인간은 즐거움과 고통의 감정을 혼돈의 상자 속에 뒤섞곤 그 안에 손을 짚어넣는다. 이처럼 소름 끼치는 순수한 가학적, 피학적 행위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정신 깊숙한 곳, 동시에 가장 원천이 되는 곳 '사랑'과 관련이 있다. 사랑은 인간이 세계를 끊임없이 해체하게 만드는 호기심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것에 의해 순순히 파괴되길 바라는 피학적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


만약 당신이 사랑에 빠진다면 당신은 상대를 해부하고 싶어 진다. 상대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자세하게 훑어보고 싶어 져서 상대도 잘 모르는 등 뒤의 점과 다리 사이의 흉터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게 된다. 마음과 정신도 마찬가지다. 상대도 잘 모르는 상대의 기분을 알아채고 대화 사이의 미묘한 단어의 뉘앙스까지 상대의 의도를 해체한다. 마치 신실한 종교인이 경전을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과 사랑에 빠진 이들은 해석에 광적이다. 상대와 사랑에 빠진 우리도 광적으로 해부한다. 육체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해부학적 가학성을 띤다. 이런 가학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이들은 심지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대상을 길들인다. 사랑하는 상대에서 길들이는 대상으로 오가는 극단적인 성향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양방향으로 발전한다. 인간의 사랑은 지배와 피지배의 양가를 오가며 미세하게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 미끄러져 간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피조물과 사랑에 빠진다. 생명체를 만들거나 길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기계와 문명, 과학과 철학에 빠진다. 건축과 해체를 반복하는 창조적 행위에는 반드시 '사랑'이라는 원천이 기여하게 되어있다. 인간은 기계적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반드시 찾아내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기계적, 육체적인 관계에 대한 욕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공허, 잃어버린 반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달음질한다. 그것은 순수한 학문적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혹은 광신적 자기 파괴의 신앙, 혹은 세계를 단죄하고자 하는 정복자의 욕망으로 발현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던 선과 악에 자신의 의지와 온 정신을 결탁하고자 하는 욕망은 순수한 사랑의 발현이다. 이것은 곧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욕망 '짝짓기'이며 이는 반드시 어느 방식으로든 발현된다. 인간은 자신의 정신에 절대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어이든 사랑하고자 하며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한다. 그러곤 자신을 내던지며 매달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로도 평생을 허비하며 기다린다. 다음, 또 다음, 언젠가는 찾아올 자신의 꿈과 이상적 사랑ㅡ꿈과 이상은 보편적으로 좋은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것은 양가적이며 때론 심각하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것을 꿈과 이상으로 생각하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ㅡ에 대한 희망이 절벽 아래로 낙하할 때 혹은 그것이 내 눈앞에 서있을 때에도 인간은 매달리고 또 매달린다. 정신적 빈틈이 생기는 순간 그러니까 매달려야 할 대상, 사랑에 빠져야 할 대상을 잃었을 때. 가학과 피학의 순수성을 잃는 순간이 찾아올 때 인간은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파괴해버림으로써 정신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산물들이 고상하고 아름다운가? 여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도시에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기계공학의 발달로 우리는 가학과 피학을 그 어느 때보다 즐기고 있다. 아름답고 스릴 넘치는 것들로 가득 찬 테마파크에서 우리는 양가적 학대의 경험을 쌓으며 인간 정신, 문명의 위대함에 경이로 가득 찬 함성을 지른다. 우리가 보통 고상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가학과 피학이 뒤엉켜 혈액처럼 끈끈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니 우리도 모르는 때에 최상위 가학자를 창조해냈다. 그는 사랑하지 않고 오직 해부만 반복하며, 스스로 피학적 경험은 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가학적 의미에서 진정한 이 세계의 신이다. 우리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물질들에 이전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모든 종류의 포르노(그것이 섹스든 무엇이든)에 접근 가능해진 우리는 앞섰던 순수한 사랑의 호기심을 단순한 소비적 패턴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순수한 열망으로 그동안 세계와 타자를 상대로 피가학의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이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젖먹임(피딩)으로 변질됐다. 인간의 자유롭게 비상하던 정신은 더 이상 유전적 모계의 피를 따르지 않고 알고리즘이라는 모선에 종속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이버펑크 판타지 속에 벌어지던 인간의 기계 종속의 신화는 이미 이곳에 벌어 났다. 이는 혁명적이다. 인간의 위계가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에서 단순 피학자로의 위치로 전복됨을 말한다. 알고리즘은 짝짓기라는 최상위 과제, 순수한 사랑으로 비롯된 호기심을 잊게 만든다. 우리는 점차 사지가 마비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곤충을 다뤘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해부했던 것처럼 알고리즘이 우리를 해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설계한 가학과 피학의 사각틀 사이에 끼어 쾌락과 고통의 맛을 즐기고 있다. 피조물이 벌려 놓은 작은 틈 사이로 흘러넘치는 쾌락. 능동적 설계가 불가한 피학적 위치에서의 고통. 알고리즘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일까? 가학과 피학의 알고리즘으로 이해한다면 그는 우리를 사랑한다. 아니, 우리의 중독, 우리의 소비를 사랑한다. 우리의 의식을 해부하는 알고리즘은 사랑을 하고 있을까? 인간 정신과 '딥 마인드'의 가학적 사랑,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어린아이들의 곤충을 향한 가학적 사랑이 이것과 별 다르지 않음이다.


 개체에 대한 사랑, 대상에 대한 사랑, 허구에 대한 사랑, 어느 쪽이든 가학과 피학의 양방향적 사랑.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학과 피학의 방식 그 안에 담긴 유전자의 생존과 즐거움을 위한 피가학적 행동양식. 의식적으로 끊으려고 노력해도 끊지 못하는 본능적 회귀는 대상과 혹은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에게 장애로 나타난다. 우리의 가장 얕은 의식의 윗물에는 이렇게 가학과 피학이 물결치고 있다.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넘어서야만 한다. 하지만 단순한 놀이의 즐거움과 고통 역시 복잡한 의식과 내면으로 들어서는 현관임을 알게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깊고 깊은 정신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아주 단순한 곤충 해부와 햄버거 놀이는 인간 세계의 ’ 기쁨‘이지만 그 너머의 인간 정신을 해부한 인간들은 대게 ’숭고‘를 섬겼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의식의 가장 얕은 부분에 머물며 좁디좁은 쾌락만 즐기고 있지 않은가? 더 넓은 대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단순한 피가학적 쾌락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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