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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r 26. 2023

취업은 짝사랑이다

에세이

왜 다들 정장을 입었지?라는 의문문을 남긴 뒤 실무자의 안내를 받아 면접 대기 장소로 따라갔다. 8층 한켠 구석 자리에 위치한 회의실에 의자도 넉넉하지 못해서 둘은 서 있어야 했다. 이곳저곳 적혀 있는 주의 경고를 보며 이곳은 꽤나 경직된 분위기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곳에 사용된 폰트나 어투로 이 회사의 분위기를 척하고 파악했다고 말하는 건 좀 건방진 생각이긴 했다. 함께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내 경쟁자들의 얼굴 표정이 그래서 그렇게 느낀걸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내 얼굴도 역시 퍽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왜 정장을 안 입었을까? 나는 그저 담당자의 깔끔한 복장이라는 말을 정장이라고 생각치 못했다. 아무튼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고 나는 겁 없이 그 회의실 근처를 서성이며 주변을 구경했다. 차피 오늘 떨어지면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인데 라는 생각으로 목을 슬쩍 뻗었다. 다들 자기 일에 바빴다. 어쩜 그렇게들 다들 바쁜지 내가 거기서 신나게 박수를 쳐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듯했다.


면접 순서가 되었고 나와 남은 이들이 줄 지어 실무자를 따라 면접장소로 이동했다. 특유의 어수선함 그리고 어설프게 군기가 들어서 실무자의 말에 '넵'하고 대답하는 게 입소 1일 차 훈련병들 같았다. 나 역시 와중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겠다고 고개를 빼꼼거렸다. 잘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간절했으니까.


자기소개는 늘 어렵다. 자기소개라니. 나를 대체 무엇으로 소개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합니다. 특히 나는 무엇 하나 특정 지을 유별난 게 없으므로 자기소개가 매우 곤란하다. 그럼에도 나는 살포시 웃으며 준비한 자기소개를 열심히 또박또박 발음했다. 뭐 늘 면접이 그렇듯 면접관들은 질문을 하고 경쟁자들은 나보다 어리고 경력도 있고 말도 잘한다. 그래도 나한테 마지막 질문이 하나 들어왔고 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고픈 배를 추리러 맥도날드에 갔다. 햄버거는 늘 그렇듯 맛있었는데 기이한 건 내 맞은편에 앉은 알 수 없는 관계의 두 여성이 괜히 나와 면접관의 사이처럼 보였다.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관계였지만 한쪽은 읍소하는 것처럼 보였고 한쪽은 서류를 뒤적이며 상대와 종이에 시선을 번갈아뒀다. 난 참 신경 쓰이는 게 많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곤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면접을 곱씹었다. 갑자기 나의 처지가 괜히 서러웠다. 서러울만한 일도 아닌데 말이다. 나 좀 뽑아줍쇼 하고 읍소를 하는 일이 뭐 그렇게 낭만적인 일이라고 잠깐 우울해졌다가 말았다.


면접을 볼 때 했던 말들이 괜히 머릿속을 오갔다. 두부를 살 때도 계란 후라이를 할 때도 운동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도 샤워를 할 때도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참,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취업은 짝사랑 같은 거구나 싶었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내가 그 당시 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건지 그 사람의 눈빛은 대체 뭐였는지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며 메시지와 이메일을 번갈아 바라보는 짓이 꼭 짝사랑과 같았다. 사랑하지 않고서 이런 게 가능하다니. 아니면 나는 분명 그 일을 사랑했나 보다. 아니면 사랑한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며칠이 지나고 잊어버렸으니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이 나은가? 아니면 기한을 지나 그냥 아무 말 없는 게 나은가? 어느 쪽이던 나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짝사랑에 실패한 사람처럼 조금 우울하고 조금 서운해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다시 살아가면 될 일이다. 다시 조금 돌아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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