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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r 24. 2023

범죄의 인플레이션

에세이

모든 게 팽창한다. 팽창을 거듭하는 세계. 한 점에서 시작한 우주가 우리가 아는 한 끊임없이 팽창하듯, 우리가 사는 세계 역시 끊임없이 팽창했다. 인구, 경제, 환경오염,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은 조금씩 점차 늘어난다. 정보 역시 그렇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보는 20년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늘었다. 미디어는 기술과 함께 급속도로 팽창했고 몇몇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혹은 SNS를 인류 최악의 기술이라 지칭한다. 급속 도파민 충전기 스마트폰을 잠금해제 하면 나는 순식간에 100개가 넘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곧 까먹겠지만. 근데 뇌리에 유독 박히는 게 있다. 도덕률과 법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심되는 세계 곳곳의 범죄들, 아니 대한민국에도 치를 떨게 만드는 범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것들이 뇌리에 꽤 깊숙이 박힌다. 아마 일 년 치 범죄 관련 기사들을 전부 스크랩하면 아마 내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범죄로 가득 차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지?


내 여자친구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PD수첩 같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자주 봤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 듯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 방송들을 보며 분노하고 굉장히 기분 나빠하면서도 왜 계속 보고 있는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쁜데 그걸 굳이 챙겨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순기능에 대해 몰라서 질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왜 기분이 나쁘고 소름이 끼치는데 그것을 마주하고 마는 걸까? 흠, 위험한 정보를 수집하면 할수록 생존에 더욱 유리하기 때문일 것 아닐까? 싶은 추론을 나는 슬쩍해 본다. 나는 사실 그런 정보들이 모조리 노이즈로 들린다.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세계와 인간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단순히 겁이 많고 불안도가 높은 인간이라 그런 정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무시를 선택한 편이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범죄자는 얼마나 욕하기 좋은가? 그 누구도 죄책감 없이 단죄할 수 있다. '죽여버리고 싶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에 얼마나 좋은 대상인가? 누가 범죄자를 옹호하는가?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전과 비교하여 그 빈도가 조금 많이 늘었다고 생각이 든다. 세계에 범죄자가 많아진 걸까? 아니면 검거율이 높아져서? 미디어 접근성이 너무 편리해져서? 아니면 매체가 너무 많아져서? 나는 어떤 죄악의 바다 위를 수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바다는 가끔 경계가 희미해진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죄악의 바다에 부유하는 선한 인간인가? 아닌 것 같다. 바다는 모든 걸 삼키니까 나도 죄악의 인간일 것이다. 부덕함, 저열함, 폭력성 역시 팽창하고 있다. 이 세계에 팽창하지 않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분명 ‘선’이라고 지칭할 법한 것들도 팽창해야 할 텐데. 애초에 ‘선’은 우리가 규정하기 어려운 종교적 신비체험에 가까워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끔 신기루처럼 우리를 속일 뿐. 그렇다고 그것이 진정으로 없냐라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사막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망망대해 어딘가 무인도가 있는 것처럼. 그 섬을 전초기지로 삼아 우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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