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손실 방지 프로젝트
1층 (반지하)이라고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나는 여기를 1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반지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내 수준에 합리적인 월세. 그리고 나쁘지 않은 인테리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계단 형식으로 된 몰딩 된 수납침대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중개인이 앞 전에 보여준 것들은 전부 이것보다 더 낡고 오래된 집들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어서기도 꺼려지는 그런 집.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만 있을 것 같은 그런 집.
서울에 이주하고 처음으로 마주한 집도 반지하였다. 그땐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었기에 나는 1층을 곧이곧대로 1층이라고 생각했다. 방 번호도 105호였고 중개인도 1층이라고 했으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제는 그런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이사라면 이골이 나버린 사회인에게 그 방은 분명 반지하였다. 하지만 이번만 나를 속이기로 작정했다. 1층이라고.
낮 시간에도 창을 마주한 건물 때문에 햇빛이 들어올 틈새가 없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위닉스 제습기를 들여놓는 일이었다. 반지하는 그렇다. 하루에 한 번 제습기 통의 물을 갈아줘야 한다. 빨래를 마땅히 널 곳이 없는 원룸에서는 반드시 제습기를 하루 종일 틀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어느샌가 벽면에 물기가 슬슬 기어 나오곤 한다. 곰팡이가 핀 벽면을 보기라도 하면 한숨이 푹하고 새 버린다. 구축 건물의 반지하는 정말 피해야 한다. 아무리 도배를 새로 했다 하더라도 도배지 뒤에 곰팡이가 숨을 죽이고 다음 세입자를 기다린다. 그 놀라운 사냥꾼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 안정감을 찾아갈 때쯤, 거의 한 달이 지나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방구석 모퉁이 한편에 그 사냥꾼이 처음엔 아주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파란 눈만 번뜩이고 있다가 나중엔 그 시커먼 형체를 드러내고 만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먹잇감이 된 세입자는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게 된다.
'씨발, 다시는 반지하에서 살지 않기로 했는데.'
나의 선택을 탓하며 시계추를 빠르게 돌렸다. 얼른 시간이 지나가길. 빨리 이 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고집 강한 나는 집주인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 만기일 전에는 잘 이사를 나가지도 않는다. 단지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만을 기도했다. 나는 지인들에게 매번 경고한다. 어느 이유에서라도 1층 (반지하)에 들어가서 살지 말라고. 나는 반지하라는 부동산 매물이 있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시장 논리에 의하면 1평 짜리 방도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필요하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될 테니까. 하지만 뻔뻔하게 주소지에 1로 시작하는 숫자를 걸어둔 것이 매우 괘씸하고 화가 난다. 그리고 1층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중개인까지. 이건 시장논리와 상관없이 그냥 사기다. 반지하는 지하다. 1층 괄호치고 반지하가 아니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