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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r 26. 2023

신년운세사주타로

에세이

새해의 겨울.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적실 때 을지로와 종로, 명동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노상에 만들어진 포차 같은 점집들이다. 점집, '신년운세사주타로'라는 표어의 강렬한 그 폰트와 분위기가 참으로 묘하다. 묘하게 따스하고 안락해 보이는 그 분위기는 어쩌면 내게 겨울의 붕어빵과 호빵과 같이 훈훈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나는 길을 걸으며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그 내부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괜히 흐뭇해한다. 신기한 마음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여성과 의심스럽지만 멋쩍게 웃으며 일단은 맞장구치는 남자. 올해의 시작과 끝은 어떨지,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두고 기대와 걱정으로 서성이는 사람들. 나는 사주타로를 믿지도 않으면서 괜히 그 훈훈한 마음들이 나를 흐뭇하게 만드는 걸 느꼈다. 그리고 후에 여자친구와 함께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왜 그런 마음들이 들었는지 알게 됐다.


점쟁이는 심리상담기술이 발전하기 전 일종의 심리상담가였던 것 같다. 실제로 사주나 타로를 보는 장소들은 대부분 볼이 빨개질 정도로 따뜻하고 조명은 주로 주광등을 많이 써서 분위기가 참 따습다. 음악을 틀어 놓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명상 센터나 심리상담소와 비슷한 음악을 공유하는 듯하다. 내가 미디어에서 접한 신 내린 점쟁이들의 점집들은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사주타로들은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인사동의 유명한 사주타로 카페를 여러 군데 들렸는데 하나같이 그랬다. 같은 공간 속 작은 파티션을 두고 나뉜 작은 공간에 사주타로를 봐주는 점술가들이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 고객층은 여성인 듯했다. 대부분 내가 흘러들은 이야기들은 고민 상담 같았다. 점술가들은 최대한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의 사주나 운세에 맞춰 설명을 해준다.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심리상담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날까지만 해도 사주와 타로는 돈낭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딱히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사실 인생에서 한 번 정도의 경험, 아니면 일 년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때 이후로 '그거 돈 아깝다'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가끔 자신의 이성이 충분히 발달했다고 착각한다. 나는 이성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다.라는 착각이 사람을 오만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이성적 범주에서 벗어난 타인의 해석 불가한 행동에 대해 쉽게 비난한다. 나는 냉철하게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착각이 나와 다른 범주의 타자, 혹은 반대의 집단에게 쉽게 멍청하단 낙인을 찍어버린다. 특히 신비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유독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비주의에 매료되고 있다. 간단하게 사주타로를 볼 수 있는 운세 어플은 꽤나 인기가 좋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사주, 타로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전문 점술가들이 적은 비용으로 원격으로 사주와 타로를 봐주고 수익을 얻는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해당 산업이 해가 지날수록 커져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주팔자, 타로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신년운세사주타로가 인기가 있는 건 그냥 당연한 맥락이다. 시작과 새것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설렘과 불안 사이의 혼란을 잠재우고 싶은 마음 그뿐이다.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옮길 때 사주, 타로, 신점이 궁해지는 건 당연하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순간, 매 맞기 전 먼저 맞고 싶은 마음, 괜히 찬바람이 허파를 가득 채우는 쓸쓸한 순간... 공통점 없는 문장들 같지만. 겨울의 미묘한 분위기의 맥락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런 거 왜 믿냐 같은 힐난은 마음에 다시 담아둬야 하는 게 분명하다. 그냥 다들 불안하게 살아가는구나 싶은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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