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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r 28. 2023

피지컬에 대한 숭배, 그러나 결론은 멘탈리티

에세이

인간의 건강하고 심미적인 육체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름답고 훌륭한 비율을 가진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이 머릿속에 곧장 떠오르지 않는가? 특히 근육질의 심미적, 기능적으로 훌륭한 남성의 육체는 그리스 철학의 일부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나 역시도 몇 년 전부터 근육질의 육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만 보면 내 또래 세대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보충제 등에 대한 관심은 상당한 것 같다. 당연히 수요가 높아지면서 공급자들도 늘어났고 동네에 헬스장과 PT샵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때문에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다들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에 관심이 높아졌을까? 왜 우리는 피지컬을 숭배를 하기 시작했을까?


나는 우리 세대를 정신적으로 유기된 세대라고 본다. 너무 거친 어투이기도 하고 사실 근거를 댈 만한 단어들은 몇 개 없다.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은 나의 유기된 정신세계일 테다. 하지만 그래도 말을 이어나간다면 우리 세대는 분명 이데올로기와 사투하는 세대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이데올로기 위에 둥둥 떠다녀서 무엇을 자신의 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할지 모르는 세대이다. 언젠가 과거에는 하나의 방향으로 젊은 청춘들의 정신이 흘러가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항거했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결여가 확실했던 세대의 청춘들은 분명 자신의 삶의 근거가 될 만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너무나 풍족한데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정신적 근거가 반증 가능한 세대. 어떤 시대정신이건 내일 아침이면 타락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세대. 그리고 치열했던 이데올로기의 전투들의 상흔만 남아 딱지 진 흉터만 본 세대들은 이제 과거 세대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다. 그러니까 지금 세대의 가장 확실한 이데올로기는 돈과 육체 그뿐이다. 너무 비약적으로 결론에 이른 것 같긴 하다만 지금 같은 시대에 가치 중 최상위를 차지할만한 것은 역시 돈과 육체가 아닐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것들은 당장이라도 내게 만족감과 안정감을 줄 것만 같다. 그리고 이전 세대보다 이미지와 움직이는 것에 민감해진 우린 더욱더 육체적인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연출가와 작가들은 이에 맞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에서 피지컬에 대해 다뤘지만 드디어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으로 완성되는 듯했다. 피지컬 100은 가장 완벽한 신체 능력을 갖춘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한 방송이었다. 기능적, 심미적으로 멋진 육체를 가진 100인의 참가자가 경쟁을 하고 참가자들의 신체를 본 따 만든 토르소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마치 콜로세움움의 결투를 보는 듯한 재미에 열광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피지컬보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열심과 노력, 열정과 끈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 끝까지 싸워내는 정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정신은 모두 그 끝에 행위로 증명되기 마련이다. 피지컬에 대한 숭배는 어느새 멘탈리티에 대한 숭배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무엇에 감동을 받는가? 더 강력하고 멋진 몸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정신으로 무장한 인간의 마음에 압도되고 만다. 피지컬 100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지닌 강력한 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셈이 됐다. 그게 연출가 작가의 첫 의도였을까?


대중은 무엇에 압도되고 무엇을 숭배할지 아주 빠르고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여전히 돈과 육체는 숭배의 대상이다. 하지만 숭배해야 할 대상 중 최상위 가치를 차지하는 것이 그뿐만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러니 피지컬(물질적인)에 대한 숭배는 반쪽짜리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한 갈증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그 갈증을 해결하는 것은 아마 남겨진 세대의 몫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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