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내 청춘
1988년 5월 26일 오후 5시쯤.
서너 명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교문 쪽으로 후다닥 뛰어가는 게 보였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교문 기둥 위에 올라선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학우여, 민주주의, 일어나자.' 이런 단어들이 간간이 들리긴 했지만 워낙 혼란스러워서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교문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물론, 멀리 있던 학생들까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여학생들이 얼굴을 감싸고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교문 밖을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몰려들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곳에서 깃발을 움켜쥔 손을 높이 들고 노래하는 사람은 탁수, 김탁수. 나의 고등학교 동기 김탁수였다.
졸업식 전날 우리는 청주집에서 꼼장어를 먹다가 심하게 다투었다.
나의 머뭇거리는 세상과 그의 저돌적인 세상의 충돌.
그후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살았는데 3년도 훨씬 지나서 그렇게 얼굴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는 나를 못 봤겠지만.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그의 노래 소리는 우렁차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런데 그는, 노래를 다 부른 후 왼손에 들려 있던 시너통을 머리 위로 들더니 모두 몸에 부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안타깝게도 왜 그렇게 많은 민초들이 자기 몸을 불살랐는지 모르겠다.)
"탁수형, 안돼." 라고 외치며 한 학생이 경비실 지붕 위로 올라가 교문 기둥으로 향했다.
나도 마음 속으로 외쳤다. '탁수야, 안돼.'
이미 탁수의 오른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민중의 힘으로, 민주주의 만세."라고 외친 후 탁수의 엄지손가락이 라이터를 힘주어 그었다.
교문 주위는 마치 공포영화의 절정부분 같았다.
모두들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럴 수가!
라이터가 켜지지 않은 것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라이터가 켜지지 않은 건, 고장이 난 것 같았다.
한 시간쯤 후 난 총학생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탁수야, 오랜만이다."
"야, 니가 웬일로 …, 반갑다."
"야인마, 난 니가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인지도 몰랐어."
"너 우리 학교 다니냐? 나도 몰랐네."
"난 재수했어."
"그랬구나."
"밥은 먹었냐?"
"그렇잖아도 막 먹으려고 했는데."
"깨끗하게 잘 씻었네."
"너도 …, 봤냐? 쪽팔리게 …. 축구부 샤워실에서 씻었다."
"그날 청주집에서 꼼장어구이 먹은 거 기억나냐? 그거 먹으러 갈래?"
"그럴까? 갑자기 군침이 확 도는데."
"가자. 그나저나 라이터는 왜 안 켜진 거냐? 라이터가 정말 고장난 건 맞냐?"
"오늘 날씨가 너무 좋잖아."
찌질했던 과거 얘기가 끝나고 불안한 미래를 얘기할 때까지도, 벌건 연탄불 위에서 자신을 헌신한 꼼장어를 우리는 다 먹어치우지 못했다.
꼼장어보다 우리 자신이 더 애틋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