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내 청춘
"선두 제 자리."
부대까지 약 20분 정도밖에 안 남은 것 같았는데 중대장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모두 복창을 한다.
"선두 제 자리."
4박 5일간의 진지구축 훈련을 모두 마치고 총 이동거리 80km의 행군을 끝마치는 감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대장님의 지프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더니 중대장님을 불러세운 것이다.
"김대위, 저기 10시 방향 병사 소총은 어디 있나?"
"예? 소총이요?" 중대장님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내 앞에 걷던 정선열 이병을 가리키는 대대장님의 지휘봉 끝에 있어야 할 정이병의 소총이 진짜 없는 것이다.
난 눈을 의심했다.
정이병의 앞, 뒤, 옆을 모두 훑어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소총이 없었다.
박중사님과 신병장님, 그리고 정선열 이병은 직전에 휴식한 곳으로 가보기로 하고 달려갔다.
우리는 부대까지 약 2km를 오리 걸음과 낮은 포복으로 가야만 했다.
중대장님의 배려로 뒤로 취침과 앞으로 취침까지 적절히 곁들여서.
다행히 직전 휴식한 곳에서 정선열 이병의 소총을 찾았다.
부대에 돌아와서도 중대장님의 얼차려는 이어졌다.
대대장님에게 지적당한 수모 때문에 중대장님의 화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우리 중대는 꽤 오랫동안 모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침은 역류하고 피는 머리로 쏠리고 땀은 눈으로 들어가고,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중대장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선열이 분대장은 누구냐?"
우리는 정선열 이병의 분대장이 맹현수 상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일어나서 자신의 관등성명을 '상병 맹현수'라고 외칠 것을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긴장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맹현수 상병은 역류했던 침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일어서며 이렇게 외쳤다.
"탕병 맹탕병."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이없는 웃음이 분출되면서 침이 역류하여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다른 병사들도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픽픽 쓰러지고 말았다.
선임들은 모두 그를 '맹탕병'이라 불렀고, 한 달 후임인 나도 분위기 좋을 땐 '맹탕병님' 하고 이죽대곤 했다.
어느날 점심식사로 감자탕이 나온 날, 우리는 모두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박중사님이 옆에 오시더니 "야. 맹탕병, 오늘 감자탕은 너무 맹탕 아니냐?"
6년 후 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준비도 힘들었고, 처음 해보는 결혼식이라 나도 무척 긴장했었는데 결혼미사가 거의 끝나가자 피곤하기까지 했다.
엄숙했던 미사의 마지막 순서로 가족 대표의 인사말 순서가 되었다.
평소 보수적이고 근엄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아버지께서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으셨다.
300명 정도 되어보이는 하객들 모두 아버지께 집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시더니 "흡흠." 하며 목을 가다듬고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말을 읽기 시작하셨다.
"봄꽃이 완연한 화탕한 봄날에…."
난 순간 맹탕병이 생각났다.
아! 이 화창한 봄날에 왜 맹탕병이 생각이 날까.
'아버지, 정말 죄송하지만 도대체 뭐가 화탕하다는 겁니까?'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이없는 웃음이 분출되면서 침이 역류하여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그 후로 아버지가 무슨 인사말을 하셨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풀린 다리에 힘을 주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