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알바

나에 대한 진지함

by 문기사

나는 얼마전 왼쪽 다리를 다친 친구의 부탁으로 택배 알바를 한다.

친구와 나는 오래된 동네의 골목을 누빈다.

좁고 경사진 골목을 들어가 석회동굴의 입구 같은 곳에 차를 멈추고 친구는 "이 집이야." 라고 일러준다.


전봇대 뒤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도망친다.

난 적잖이 놀란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녹슨 철문을 연다.

끼이익 크릉.


고양이 녀석이 헤집어놓은 쓰레기봉투는 터진 내장처럼 마당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퀘퀘하고 눅눅한 냄새는 그 내장에서 나는 것이 분명하다.


난 '똑똑똑' 이라는 소리가 나도록 다정하게 문을 두드릴 여유가 없다.

툭툭툭.

잠시 침묵.

툭툭툭툭.


친구의 말이 맞다.

열의 아홉이 집에 없다.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벨소리가 전화기를 녹여버릴 것처럼 울려댄다.

받지 않는다.


젠장.

잠시 고민한다.


할렐루야.

받는다.


"창고에 넣어주세요."

창고 문을 연다.

곰팡이들이 종유석처럼 바닥과 벽을 뒤덮고 있다. 조용히.


택배상자를 집어던진 후 창고 문을 닫으니 곰팡이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 상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숙여야만 나올 수 있는 녹슨 철문을 닫는다.

끼이익 크릉.

구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혀를 찬다.

쯧쯧쯧.


전봇대에 붙은 '함께 사는 행복 도시'라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가 슬그머니 도망친다.

나는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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