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내 청춘
"잠깐 진정 좀 시키고요."
'무슨 간호사가 혈관도 못찾고 그래? 간호사 맞아?'
5분이 넘도록 링거 꽂을 혈관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찌르기만 한 것이다.
아이는 아프다는 차원을 넘어서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알고 처치실이 뒤집어지도록 울었다.
혈관 파열이든 울다가 질식이든 둘 중 하나로 죽을 지경이었다.
딸아이는 내 품에 안겨서도 아픔과 분함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부모님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처럼 펑펑 울고 있었던 것이다.
딸과 내가 울음을 그친 후 난 비장한 각오로 용단을 내렸다.
"제가 해볼게요."
엄마는 간호사보다 강하다는 말은 내가 처음으로 한 거다.
"제가 간호조무사예요. 저도 할 수 있거든요."
자격증 하나쯤 따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놓은 게 있지만 병원에 취직하지는 않았다.
"어머니,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아, 벌써 5분 넘게 실패했잖아요. 바늘만 꽂을 테니까 나머진 간호사님이 하면 되잖아요."
거의 강제적으로 간호사의 자리를 차지했다.
간호사도 신참인 것 같았다. 딸을 살려보겠다는 억척엄마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세미야, 이거 해야 돼. 그래야 아픈 거 금방 낫는 거야. 아주 잠깐만 따끔 하면 금방 끝나고 그때부턴 절대 아프지 않으니까 잠깐만." 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안심시켜놓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심시켜놓고 아이가 사태 파악을 하기 바로 직전 혈관을 찾아 바늘을 쑥 집어넣었다.
실습 때도 각종 주사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아이의 팔에 내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성공한 나를 향한 기쁨의 눈물인지 괴로워하는 아이를 향한 아픔의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아병동에 소문이 파다했다.
난 조용히 있었는데, 바늘 꽂을 때 옆에 계셨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혁혁한 공을 조용히 넘기기는 힘드셨던 것 같다.
우리 병실 엄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세미 엄마, 우리 아이 링거가 잘 안 내려가는 것 같은데 좀 봐줄래요?"
조절기를 돌려 링거액이 적당히 내려가도록 처치해준다.
"깜빡 잊고 저녁약을 안 먹였는데 지금 먹여도 될까?"
저녁 먹은 지 한 시간 조금 지났으니 상관없다고 일러준다.
밤에 잠을 자는데 한 아이 엄마가 나를 깨운다.
"세미 엄마, 미안한데 우리 애가 마른기침을 많이 해서. 어떻게 하지? 간호사실에 간호사가 없어요."
일단 아이를 안고 등을 가볍게 쳐주라고 알려준다.
의학적 처치는 물론 육아와 살림에 관한 노하우, 심지어 부부생활, 재테크까지 모두 나를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내가 하는 말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아픈 아이를 입원시킨 엄마들의 나약해진 심신은 나의 위상을 계속 부풀리고 있었다.
그렇게 부풀려진 나의 위상은 그들의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또 다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입원 3일째 되는 날엔 그 높은 곳에서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내려올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딸만 넷인 집 막내로 자랐던 내가 그렇게까지 추앙받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도 그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3박 4일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원하는 날 우리 병실의 엄마들은 내 주위로 몰려와 카톡방이나 밴드를 만들자고 했다.
난 쿨하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폴짝폴짝 뛰어나가는 세미를 따라서 병실 문을 나섰다.
긴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레드카펫이 깔려 있고 좌우의 병실 문 앞엔 간호하다가 급히 뛰어나온 보호자들과 간호사들이 줄지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십 개의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렸다.
남편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내년에 총선 출마라도 해볼래?"
"아니. 집이 엉망이겠네."
내 얕은 한숨 소리가 조용한 병원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