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둔한 내 청춘
중학교 3학년 때 동네 공터에서 일요일마다 야구를 한다고 하며 병민이가 나를 데리고 갔다.
제대로 야구해본 적은 없지만 곧 유니폼까지 맞출 계획이라고 하니 설레기까지 하여 마다할 수가 없었다.
글러브도 없던 내가 공터에 들어서자 주장이라고 하는 형-고등학교 2학년-이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일단 좌익수 해봐." 주장 형은 나에게 글러브를 던져주었다.
상대편은 동네 짜장면 배달하는 형들이었다.
우리 팀에는 휘문고등학교 1학년 야구부 형이 있기에 쫄지 않았다.
주장 형은 경기 중엔 감독이 되어 팔짱을 끼고 서서 작전지시를 했다.
결과는 8대2.
그 소중한 2점은 야구부 형이 솔로홈런과 3루타를 쳐서 얻어낸 것이었다.
"8 빼기 2는 6. 여섯 대씩 맞는다."
주장 형은 야구부 형을 제외한 모두를 벽에 기대게 한 후 야구 방망이로 소위 '빠따'를 쳤다.
병민이가 주장 형의 빠따를 세 대쯤 맞더니 몸을 비틀며 주저앉았다.
난 병민이가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온 것뿐인데 이걸 왜 맞고 있는 건가.
누가 저 형에게 빠따를 칠 수 있는 권력에 야구부 형을 열외시킬 수 있는 권력까지 준 건가.
그리고,
난 왜 2점이라도 올려준 야구부 형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건가.
엉덩이가 얼얼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다음 날 점심시간에 선도부 형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교실 앞에 늘어선 선도부 형들의 노란 완장에는 '선도'라고 쓰여 있었다.
교탁 중앙에 선도부장 형이 서서 외쳤다.
"동작 그만. 모두 일어서."
그 형이다. 야구부 형.
'야구는 아직도 할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그 형의 손에는 찌그러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절제시켰다.
"눈알 굴리지 마라." 선도부장 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웃기고 있네.' 내 머리 속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내 머리 속의 생각이 '풋'이라는 짧고 뜻모를 감탄사에 실려 입 밖으로 한 조각 삐져나왔다.
웃은 게 아니었다. 아니, 웃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구야?"
순간 정적.
"누구야, 손 들어."
역시 정적.
"너 아냐?" 선도부장 형이 나를 가리켰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었다. 표정조차 미동 없이.
"너, 나와."
교탁 앞으로 나갔다.
"너야? 웃겨?"
잠깐이었지만 함께 야구했던 나를 알아본다는 뜻인가, 아니면 웃은 게 '너'라는 걸 세뇌시키는 건가.
선도부장 형은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쌍싸대기를 날렸다.
나도 내 감탄사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데 이걸 왜 맞아야 하는 건가.
누가 저 형에게 이렇도록 무식하게 싸대기를 날릴 수 있는 권력을 준 건가.
그리고,
난 왜 야구 방망이로 맞지 않은 걸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건가.
귀가 얼얼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