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내 청춘
일곱 살 때 집 마당에서 기르던 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녀석이 그해 여름 개장수에게 만 원에 팔려간 일은 기억난다.
아버지 명령으로, 우리 남매의 개를 위한 봉사 파트는 철저하게 분담이 되어 있었다.
오빠는 개집 청소, 나는 여자니까 개밥 주기.
난 개 앞에 밥 그릇을 놓았다.
그런데 개의 입이 닿기에는 조금 모자라는 곳에 그릇이 놓여졌다.
난 발로 그릇을 툭 밀었다.
개는 내 오른쪽 발을 물고 비틀었다. 죽는 줄 알았다.
먹는 걸 발로 건드리니 화가 났던 건지, 아니면 그날 메뉴가 족발이라고 착각을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개는 무서워 피하면서도 보신탕을 즐겨먹는 건 개의 몸에 내 이빨자국을 내고 싶은 잠재적인 충동인 것 같다.
지금도 내 오른쪽 발에는 그 개의 이빨자국이 있다.
통일 역군이 되고 싶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임진각까지 가는 국토 종단에 참석했다.
3일째 되던 날 신발이 말썽을 부렸다.
왼쪽 신발의 뒷부분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계속 자극하더니 급기야 뼈가 보일 정도로 찢어졌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난 혼자 집에 가겠다고 했다.
중도에 포기한 게 억울하고 창피했다.
대전역 앞에서 순대국 먹고 전자오락 하고 영화도 봤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순대국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본 영화는 <괴물>.
머리는 떡져 있고 옷은 꾀죄죄하고 발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여자 아이. 내가 괴물이었다.
지금도 난 목이 높은 신발만 신는다.
스무살 되던 해에 볼링을 처음 쳤다.
참 재밌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볼링장에 갔다.
그 당시 나의 애버리지는 140 정도까지 올랐었다.
7번 핀은 자연스럽게 훅으로 하면 처리가 쉬운 편이지만 오른손잡이에게 10번 핀 처리는 쉽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휘어지도록 볼을 왼쪽 발에 가까이 붙이며 앞으로 나가다가 왼쪽 발 복숭아뼈를 강타했다.
그 날 이후로 볼링을 그만두었다.
뼈가 조각이 났을 텐데 참고 살았다.
아버지는 당구장을 운영하셨는데, 경쟁 업체에 가서 다쳤다고 하면 아버지의 사기가 많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왼쪽 발 복숭아뼈는 복숭아 모양이 아니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했던 나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야 할 순간을 순간적으로 놓쳤다.
출근 시간이라 승객이 꽤 많았다.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진출하여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전철 문이 닫히고 있었다.
난 오른쪽 발을 문 사이로 내밀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럴 줄은 몰랐다.
내 오른쪽 발가락이 문 사이에 끼었는데 전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출발했다.
엄청나게 아팠지만 너무 창피해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문에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다음 역까지 갔다.
창문에 코를 박고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누군가 나를 봤다면 아침부터 술을 퍼마셨나 하고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뼈는 부러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왼쪽 발가락과 오른쪽 발가락의 모양이 다르다.
지금까지도 서울메트로 측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발 때문에 좋은 점은, 예지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발이 좀 쑤시거나 욱신거리면 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