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식(辛苦式)

비겁한 내 청춘

by 문기사

대학교 2학년 가을 교문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학내 집회에 두어 번 참석은 해봤지만 교문까지 나와본 적은 처음이다.

이젠 나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긴 시간 동안 교문 주위를 어지럽혔다.

학생 측 전세가 불리해지고 전경들이 교내로 들이닥쳤다.

그때까지 전경들은 시위 진압 시에 학교로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하필 그날은 규칙이 바뀐 것 다.

최루탄을 작렬하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전경들의 기세는 마치 거대한 바퀴벌레군단 같다.

'저들에게 밟히면 삼계탕 속 닭살처럼 갈기갈기 찢겨서 죽을 것 같다. 무섭다.'

위아랫니가 서로 부딪히고 다리가 심하게려왔다.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을 모두 팽개치고 죽을 힘을 뛰었다.

후방에서 화염병과 돌을 지원해주던 경아의 뛰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경아의 손을 잡아 끌어줄 간격은 아니다.

난 곧 경아를 앞질러다.

"악!"

경아가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대로 두면 경아는 학생들에게 밟히고 전경들에게 또 밟힐 텐데.'

머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내 발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경아야, 일어나. 빨리 와."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언동인가, 제일 아끼는 후배라고 떠벌리고 다녔고 얼마전부터는 사랑의 감정까지 싹트기 시작했었는데 고작 빨리 오라는 소리뿐이라니.'

눈은 따갑고 가슴은 터질 것 같고 머리 속은 복잡했다.


'젠장.'

신음 소리의 맛이 맵다.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들이 우리 중대에 들어왔다.

나보다 3주 선임인 김상병님이 군기 좀 잡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김상병님이, 심심하니 재미있는 장난이나 치자고 하며 나를 끌고 나가는 바람에 날씨도 쌀쌀한데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섰다.

김상병님과 나, 그리고 신병들 사이의 애매한 긴장감이 2중대와 3중대 생활관 사이 골바람처럼 흐르고 있었다.


김상병님이 모자를 뒤로 돌려 삐딱하게 쓰더니 군기 잡기에 들어갔다.

"신병인 니들이 앞으로의 군 생활을 편안하게 하려면 우리 2중대 고참들에게 패기를 보여줘야 한다.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 패기를 보여줘봐."

"…?"

"지난달에 3중대 신병들이 내가 없는 동안에 우리 2중대 생활관을 무려 1.5미터나 밀어버렸다. 너희들이 그걸 복구한다. 실시."

"…."

"자, 힘을 합쳐서 3중대 생활관을 동쪽으로 2미터 이상 민다. 실시."

신병들은 힘을 모아 3중대 생활관 벽을 밀기 시작했다.

"왜 안 밀리는 거야? 패기가 이거밖에 안 돼? 힘이 없는 거야, 아니면 고참 말을 무시하는 거야?"

신병들은 이를 악물고 더 세게 밀었다.

"대가리 박아."

신병들은 재빨리 대가리를 박았다.

김상병님은 군화 바닥으로 신병들을 걷어찼다. 신병들은 도미노처럼 쪼르륵 무너졌다.

"이것 봐라. 똑바로 안 박아? 대가리를 땅 속 깊이 박으란 말야."

신병들은 다시 일어나 대가리를 박았다.

이마에 작은 돌멩이가 박힌 신병도 보였다.

그렇게 하기를 다섯 번.

안경이 코밑에 걸린 신병의 마른침이 땅바닥으로 길게 떨어졌다.

난 김상병님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발이 시려서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김상병님, 1미터 정도 밀린 거 같은데 나머진 내일 밀고 오늘은 그만 들어가죠. 추워요."


'아니, 이게 무슨 무례한 언동인가, 끔쩍도 안하는 콘크리트벽 앞에서 캑캑대며 인권유린을 당하는 신병들도 있는데 김상병님을 말리지는 못할 망정 웬 헛소리인가?'

발은 시렵고 가슴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젠장.'

내 푸념 소리의 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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