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내 청춘
제주도 출장이 끝나고 또 면세점에 들렀다.
대학원생인 친구 초롱이는 담배값이 인상된 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부모님께 받는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을 합쳐도 차비나 식비 등 필수적인 것 쓰고 나면 담배 살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본인이 담배 피우는 사실을 부모님이 모르고 계시니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없어서, 한 달에 10만 원이 훨씬 넘는 담배값은 몹시 부담된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별다방에서 초롱이는 "담배를 끊으면 된다구?"라고 말한 뒤 담배 연기를 '후~' 하고 길게 내뿜었다.
난 직장 업무상 제주도에 자주 가기 때문에 그때마다 면세점에 들러 초롱이에게 담배를 사다주었다.
1인당 한 보루밖에 살 수 없긴 하지만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담배를 살 수 있는 건 초롱이의 살림에 큰 보탬이 아닐 수 없었다.
초롱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다.
목에서 쇳소리가 많이 나서 검사를 받았는데 후두용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초롱이는, 의사에게는 하루에 한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말했지만 엄마에게는 여자의 몸으로 밤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후두용종의 원인이 담배인지 아르바이트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담배를 많이 피우면 후두용종이 생길 수 있지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고 후두용종이 생기는 경우는 말 그대로 듣보잡이다.
용돈을 올려줄 테니 아르바이트를 그만하라고 하시는 초롱이 엄마에게 치료비에 보태시라고 거금 10만 원을 건네드리며 위로해드렸다.
값싼 담배를 계속 공급해준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했다.
의사는 무조건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나도 의사의 처방에 적극 찬성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초롱이와 만날 때마다 간접 흡연의 피해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10년 단짝 친구를 버릴 수는 없었으니, 그동안 내가 간접적으로 들이마신 담배 갯수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퇴원하면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초롱이의 부모님께는 돌아가실 때까지 흡연 사실을 누설하지 않기로 했다.
과연 초롱이가 퇴원 후 담배를 끊을까 하고 생각하며 병원을 나서는데 환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던 어르신 한 분이 화단 흙 속에 담배를 쑥 꽂아 버리는 걸 보고 10년 전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담배를 참 좋아하셨다.
500원짜리 불티나 라이터만 쓰시던 선생님에게 품위 있는 라이터를 선물하기로 하고 우리 반 전원이 5만 원을 모아서 라이터를 샀다.
우리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신 아빠 같은 선생님이셨기에 그 정도는 비싼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승의 날 선물로 어버이 은혜 노래와 뒤섞인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드리고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라이터를 선물했다.
물론 그 프로젝트는 오지랖 넓은 내가 추진한 것이었다.
2학년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용인에 있는 선생님 묘소에 찾아갔다.
폐암으로 가실 줄 모르고 선생님에게 라이터를 선물했던 제자들이 찾아가 담배에 불을 붙여 차가운 무덤에 구멍을 내고 기어이 꽂아드렸다.
선생님은 어둠 속에서 "담배를 끊으면 된다구?"라고 말한 뒤 담배 연기를 '후~' 하고 길게 내뿜었다.
아이러니했다.
갑자기 나도 어디 한적한 곳에 앉아서 담배 연기를 '후~' 하고 길게 내뿜고 싶었다.
아이러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