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의 또 다른 어려움

나에 대한 안타까움

by 문기사

나는, 안타깝지만 사십 살까지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오십, 육십 이후까지 계속 살다가는 내 주위의 사람은 너무나, 정말 너무나 힘이 들 것이다.


라면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결혼 후 친구들을 불러 부대찌개를 대접하기로 한다.

친구들은 방 안에서 웨딩사진을 보며 수다를 떤다.

행복한 저녁이다.

부대찌개가 완성되고 친구들이 식탁에 둘러 앉는다.

밥을 푸려고 밥솥을 연다. 생쌀이다.

조금 늦었지만, 취사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친구들을 안심시킨다.

부대찌개는 식어가지만 친구들은 착하게도 30분을 불평 없이 기다린다.

30분 후 드디어 밥을 푼다.

적당히 쌀을 불린 터라 밥이 더 맛있어 보인다.

"이게 뭐야?"

도연이가 입 속에서 허옇고 물컹한 물체를 빼낸다.

곧이어 윤희가 입에서 꺼내는 것도 똑같은 물체다.

소시지의 비닐을 벗기지 은 것이다.

아직 소시지를 먹지 않은 진영이, 주연이, 민지가 왜 순간 정지화면처럼 움직이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어쩐지 칼이 잘 듣지 않았었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안타깝지만 …, 먹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 9년만에 세 번째 이사다.

시부모님이 집구경을 오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식사를 준비한다.

우선 밥부터 한다.

부대찌개 먹던 날의 과오를 떠올리며 평소와 다르게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취사 버튼을 누른다.

취사 버튼을 누른 게 확실하다. 참 다행이다.

식탁에 앉은 시부모님 앞에 예쁜 그릇에 담긴 반찬들을 올려놓는다.

밥솥에서 팝콘 튀는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밥솥은 더 격렬하게 요동치며 더 강렬한 연기를 내뿜는다.

안되겠다.

일단 창문을 모두 열고 연기를 내보낸다.

전원코드를 뽑고 어느 정도 식힌 후 뚜껑을 연다.

약 9200개의 쌀들이 뒤엉켜 떡이 되어 있다.

대부분 까맣게 탔고 하얀 색 쌀은 약 800개 정도뿐인 것 같다.

"원래 할 때 물 안 넣으면 쌀이 다 타지 않나?"

가뜩이나 민망해 죽겠는데 남편이 이죽거리고 있다.

"중간에 안 탄 것도 있네. 그건 먹을 수 있겠다."

유머감각이 출중하신 시어머님의 유머도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다.

"내가 밥솥 새 거 하나 사주마."

시아버님이 비장하게 말씀하신다.

무려 9년이나 썼으니 바꿀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안타깝지만 …, 먹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사십이 되려면 아직 3개월 정도 남아 있다.

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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