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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Apr 06. 2017

종이로 만든 철새

1

“정미선씨 댁입니까?”

TV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였다.

“전데요.”

팀장 언니가 저녁을 먹자고 해서 방송국 근처 순대국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좀 늦게 들어왔다.

장도 지우드라마도 느라 갑자기 걸려온 전화 속의 투박한 목소리에 메마르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어, 저는 차성수라는 사람입니다”

“차, 성수씨요? 누구신데요?”

“티비 소리 좀 줄일까?”

“괜찮아요, 엄마. 그냥 놔두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좀 만나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이라면 더 좋고, 안 된다면 내일이라도 ….”

“….”

“제 얘기를 듣고 계시는 건가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만나자고 하니, 이런 황당할 데가.

“홍대 앞에 ‘시랑’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서 좀 만나주십시오. 저는 배종식 일병님과 군에서 같이 복무하던 사람입니다.”

“예? 종식 선배를 ….”     


카페 안에 들어서서 군복 입은 사람을 찾았다. 금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무척 많았다. 차성수라는 남자의 계급은 일병이었다.

“전해주신다는 게 뭔가요?”

“저, 그 전에 한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이 노트를 읽어봤습니다. 다른 뜻에서 본 것은 아닙니다.”

차성수라는 남자는 탁자 위에 있던 노트를 집어 들며 말했다.

“배종식 일병님은 저보다 2주 고참입니다. 이 노트에 보니까 제 얘기도 적혀 있고, 또 정미선씨 얘기도 적혀 있었습니다. 배일병님과 9개월 정도 함께 군생활을 해본 느낌으로는 배일병님은 자살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예?”

“그러니까, 아직도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죽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장례식까지 다 치르고 종식 선배 옷이랑 소지품까지 전부 태웠는데요.”

“이 노트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배일병님이 자살했다는, 마지막 훈련 떠나기 전에 저한테 주면서 정미선씨께 전해드리라고 한 건데 제가 이제야 휴가를 받아서 ….”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앞뒤 상황을 봐선, 이 노트의 내용을 봐서도 그 훈련 전에 이 노트를 저한테 건네줄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자살을 할 계획이었다면 이 노트는 유서처럼 남겨뒀어야 했을 텐데, 일부러 저를 통해 정미선씨께 전해드리라고 한 것도 이상하고 ….”

“그게 뭐가 이상한가요?”

“자신이 자살하는 게 아니고 단지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믿을 만한 사람, 그러니까 저와 정미선씨에게만 알리려고 했다는 거죠. 만약, 관물대에 그냥 놔뒀다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보게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렇기도 하네요.”

“만약 유서라고 하더라도 정작 유언 같은 건 전혀 없고 평범한 일기장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왜 저한테 전해주라고 한 거죠? 종식 선배와 전 그냥 학교 선후배 사이일 뿐인데요.”

“이 노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배일병님은 정미선씨가 대학교에 입학하는 날부터 정미선씨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

“전혀 모르셨었나요?”

“같은 동아리여서 친하게 지내긴 했는데 ….”     


집에 돌아오니 밤 열한 시 삼십 분이었다. 책상 위에 노트를 던지고 욕실로 갔다.

차성수라는 남자의 얘기들을 생각해보았다.

정말 종식 선배는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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