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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Apr 12. 2017

종이로 만든 철새

4

종식 선배가 G.O.P.에서 나왔다는 소식이 날아온 후 면회를 간 것은 작년 십이월이었다. 서울에서 기차로 두 시간을, 역에서 시외버스로 사십 분을 더 들어갔다. 부대 이름만 전해 듣고 물어서 찾아간 부대는 생각 밖으로 초라해보였다. 면회 신청 후 이십 분쯤 지나자 종식 선배가 모습을 나타냈다.

계절이 세 번 바뀐 후 처음 만난 종식 선배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일단 파랗게 깎은 머리가 달라졌고 군복을 입은 모습이 다소 초라보였다. 근처에 있는 마을까지 함께 걸었다. 음식점에 들어가 짜장면을 먹었다. 많이 달라졌다.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 나오는 듯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시트가 튿어져 스펀지가 튀어나온 의자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다방이었지만 종식 선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에 침착하게 흥겨워했다.

종식 선배에게 작은 자유라도 선물하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종식 선배와 내가 단 둘이 있는 방에 함께 있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식 선배는 그 때 이미 위선자라는 자책감에 심하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나 그의 굶주린 야성은 나를 삼키고 말았다. 위선이라는 죄목으로 자살이라는 형을 선고받은 자의 처형 직전의 향연이었을까.

나는 그날 밤 잠을 자다가 복통으로 심하게 뒤척였다. 아침이 되어서도 복통은 멎지 않았다.  

근처에 외과병원이 하나 있었다. 그 병원이 워낙 규모가 작아서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약을 먹었다. 종식 선배의 부대 복귀 시각은 이미 지나버렸다.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빨리 들어오라는 명령만 들었다고 했다. 나를 그냥 두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구급차를 타고 좀 큰 병원으로 이동했다. 위경련이었다. 모든 상황들이 처음 겪는 낯선 상황들이어서 심하게 긴장했었나보다. 나는 나의 몸보다 종식 선배의 복귀 문제가 더 걱정되었다. 결국 종식 선배는 병원에서 밤을 넘기고 또 다른 날 아침 무렵에서야 나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준 후 부대로 들어갔다. 그 사건에 관하여 종식 선배의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월 16일

12월 23일부터 1월 1일까지 나는 사단 영창에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포함한 9박 10일 동안을 철책 속에서 지냈다. 영창을 들어가도 어떻게 그런 황금연휴에 들어갔는지.

나는 그 날 이후로 미선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날 전까지 나에게 미선은 상실한 가치의 대용품이었지만.


바닥에 조금 남아 있던 커피는 식었고 형광등에서는 불빛 쏟아지는 소리가 강렬하게 들렸다. 새벽 한 시가 지나는 것을 잠깐 보았는데 시계 바늘은 이미 새벽 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종식 선배의 생사 여부에 관한 단서는 도무지 찾지 못했다. 이불 속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차성수의 마지막 말이 다시 생각났다. 갑자기 소름이 오싹 돋아서 몸에 작은 전율이 일었다.

“그 일로 중대 분위기는 쑥대밭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 명이 불려가서 자살 경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장례식은 잘 치뤘습니까? 시신도 없는 장례식을 ….


시신도 없는 장례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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