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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Apr 19. 2017

종이로 만든 철새

6

영광에 절이 꽤 많았다. 산골마다 박혀 있는 절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았았다.

삼박사일은 너무 짧았다. 종식 선배는 나의 당돌한 행위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사이에 종식 선배는 나를 보고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종식 선배는 십 년이나 이십 년 후라도 내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종식 선배의 비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밤마다 내 이불 밑으로 종식선배의 뜻모를 웃음소리가 스며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종식 선배가 필요하다면, 이 지리한 장마 같은 싸움에 몸을 적시고 있는 나에게도 종식 선배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철새 같은 인간이 아닌가.  


3차 협상은 결렬되었고 또 다시 기약 없는 파업이 계속될 것 같았다.    


차성수를 찾아갔다. 부모님이라도 온 줄 기대했는지 나를 보자 실망하는 눈치였다.

“짝대기 하날 더 올리셨네요.”   

종식 선배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던 차성수와 나 사이에 걸려 있는 어색함을 쫓기 위해 쓸데없는 말인 줄 알면서 뇌까려보았다.

“절에 있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배일병님은 기독교 신자였다는 건 미선씨도 알고 계실 텐데, 저한테도 늘 그랬습니다. 현대식으로 멋있게 기도원을 하나 짓고 싶다고 말입니다.”

“….”

차성수의 말이 계속 되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맞아, 기도원이야. 예불이 아니라 예배이겠지. 아! 이제야 불빛이 보이는구나.’

“제가 미선씨라면 찾지 않을 겁니다. 배일병님은 이미 자살한 사람입니다. 몸은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스스로 원해서 죽은 사람이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만의 삶을 살기 원할 테니까요.”


‘아니에요. 종식 선배는 죽지 않았어요. 나는 종식 선배를 찾아줘야 할 의무가 있어요.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고 그게 나이기를 더 바랄 거예요. 왜냐하면 선배는 나를 사랑하려 했고 이제 내가 선배를 찾으면 그는 나를 분명히 반겨줄 겁니다. 그게 종식 선배의 새로운 가치일 겁니다.’

차성수에게 이 말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혀 밑에 묻었다.      


절에 비해서 기도원의 숫자는 훨씬 적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확보했다. 이번에는 종식 선배를 만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는 지금쯤 기도실에서 자신의 위선을 한 겹씩 뜯어내고 있을 것이다. 배고픈 아이의 콧물을 닦아줬던 물집 잡힌 투박한 손으로.


고속버스에 올랐다. 위선의 폭포에서 뛰어내려 살아난 종식 선배와, 거처를 정하지 못한 철새 같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던 한 가닥의 끈이 다시 팽팽하게 우리를 당기는 듯하다.

팔월의 햇살이 따갑게 볼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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