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 이야기
남편은 그의 아들이 처음부터 먹어치운 분유통을 버리지 않고 1년 넘게 모았는데, 대략 30개 가까이 되었다.
"제발 좀 버려. 어디다 쓴다고 맨날 모으고 그래?"
"일단 놔둬봐. 쓸 데 있을 거야."
똑같은 대화를 최소 다섯 번은 했다.
남편은 안방에서 발코니로 연결된 창문 아래에 그 30여 개의 분유통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우당탕탕땡그렁파샤쿠르릉꽝꽝퍽.
아들은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남편과 아내는 거실에 있었는데 잠에서 깬 아들이 침대에서 기어서 안방 창문을 넘어 발코니로 낙하했다.
창문으로부터 발코니 바닥까지의 높이는 대략 1.5미터 정도.
돌이 조금 지난 아들이 안전하게 착지하기엔 제법 높았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머리가 상대적으로 무거우니까 십중팔구 머리부터 떨어졌을 것이다.
아들이, 쌓여 있는 분유통을 무너뜨리며 떨어졌다.
분유통이 쿠션 역할을 하여 아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 일 후 곧바로 남편은 분유통을 모두 버렸다.
분유통이 할 역할을 다 했으니 더 이상 쌓아둘 필요가 없다며 쿨하게 웃었다.
남편의 아버지 생신 때 온가족이 모였다.
남편의 아들, 분유통과 함께 낙하한 그 아들이 어른들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식탁 위에 올라가서 낙하했다.
부모님 집에 가기 전 과일을 뭘 사갈까 하고 남편과 아내는 의견 대립이 있었다.
아내는 배, 남편은 포도를 사자고 했다.
갑론을박하다가 남편 의견대로 포도를 샀다.
이유는 단 하나, 자기는 배보다는 포도를 더 좋아한다는 거였다.
부모님 드리려고 사는 과일에 붙이는 이유로는 타당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남편 의견을 존중했다.
포도 상자를 식탁 아래에 놓았는데 그 아들이 포도 위에 떨어졌다.
포도가 쿠션 역할을 해서 아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어른들은 놀랐지만 온몸으로 포도 샤워를 한 아들은 신난다며 포도로 난장판을 만들며 놀았다.
배를 사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숨을 쉰 후에 아들이 헤집어놓은 포도를 모두 버렸다.
포도가 아깝지 않았다.
남편이 이사를 했다.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16층과 9층, 두 개의 집이 나와 있었다.
같은 동이었고 크기와 구조도 똑같았다.
아내는 16층, 남편은 9층을 원했다.
아내는 가장 높은 층에서 전망을 즐기기 원했고, 남편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간×최소 2년 = 어마어마한 시간이라며 9층을 원했다.
더 낮은 층이 있었다면 아마 그걸 원했을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차에 있는 아들의 장비(유모차, 가방, 기저귀 등)를 내려놓으면서 엘리베이터를 불러놓았다.
남편의 아들, 분유통에 낙하하고 포도 위에 낙하했던 그 아들이 부모가 짐을 나르는 사이에 1층에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스로 9층 버튼을 눌렀다.
세 살짜리 아들이, 부모가 자주 누르던 숫자 9를 기억한 것은 참 기특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들이 몇 층으로 올라가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부모와 동행하지도 않고 겁 없이 올라가는 세 살짜리 아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진 남편은 계단으로 뛰었다.
층마다 계단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서는지 확인하며 아홉 개 층을 뛰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9층에 섰다.
9층까지 뛰어 올라간 남편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아들은 9층 복도를 따라 집 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처음으로 우황청심환을 먹었는데 호흡이 잦아들고 진정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한 시간은 더 걸렸다.
아내는 16층을 원했던 자신의 욕심을 심하게 반성했다.
아내는 남편의 의견을 격렬하게 존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이마트 계산대에서 아내는 혼란스러워진다.
어느 계산대에 줄을 서야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이 관건이다.
남편이 결정한 계산대는 꼭 사고가 발생한다.
계산원의 교대가 남편의 앞에서 이뤄지거나, 10원짜리 동전까지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계산하느라 기나긴 시간을 할애하시는 어르신, 구매 취소 건 때문에, 상품권 오류 때문에, 포인트카드 문제 등 앞 사람의 시간 끌기로 인해 남편이 선택한 계산대는 옆 계산대보다 늘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머피의 법칙과 그 반대인 샐리의 법칙이 남편과 아내 중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짜증도 내다가 감사하기도 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새옹지마의 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