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다방의 쌍화차

나의 형 이야기

by 문기사

어제 형이 자기 생일이라며 동생을 오라고 해서 형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형은 좋은 곳이 있다며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

'깻잎 다방'

역시 다방 이름은 좀 촌스러워야 제 맛인가.

'솔잎'이나 '은행잎'이라고 이름을 지었어도 적잖이 촌스러웠을 텐데 깻잎은 또 뭔가.


형은 열두 살 때 이미 다방을 이용해봤다.

그냥 들어가본 게 아니고 손님으로서.

형은 엄마의 심부름을 가면 돈을 조금 남겨서 돌아오는 길에 다방에 들러서 쌍화차를 먹곤 했다.

다방 이름은 '노고단'이었다.

문에는 위에서부터 중간쯤 내려오는 세로 주름 커튼이 있고, 의자는 쎄무로 된 1인용 의자, 탁자에는 자개장 같은 문양이 들어 있는.


어느날, 입 밖으로 군침이 범람할 정도로 열렬하게 쌍화차 맛을 묘사하던 형은 마침내 동생을 다방으로 끌고 갔다.

형은 노고단 누나에게 이 녀석한테 쌍화차 맛만 보게 해달고 부탁을 했다.

노고단 누나는 소주잔에 쌍화차를 담아서 동생에게 권했다.

형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형의 도움으로 열 살 소년이 처음으로 쌍화차를 먹어봤다.

쓰다고 혀를 잡아 빼고 흐물거리고 있는데 노고단 누나가 숟가락에 날달걀을 가져오더니 동생의 입 속에 넣었다.

쓴 쌍화차 맛을 달래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날달걀은 고소했다.


"마담."

깻잎 다방에 들어서면서부터 형은 꽤 큰 소리로 마담을 불렀다.

"형, 마담이라고 그랬어? 요즘에 누가 그렇게 불러?"

"아냐. 여기 마담이 자길 마담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상대를 안 해줘. 본인이 직접 자기를 마담이라고 부르라고 한 거란 말야."

"마, 담?"

"마담, 여기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인데 특별히 쌍화차에 날달걀 갖다주시구려. 날달걀은 따로 접시에 담아주시고."

술도 먹지 않았는데 형은 막 취기가 오르는 사람처럼 약간 흥분해 있었다.


대학생이 된 형은 흑석동 골목에 있는 '춘심'이라는 다방을 이용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형은 쌍화차를 시켜 먹었다.

쌍화차에 날달걀을 띄우면 100원을 더 내야 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 신분임에도 노른자가 살아 있는 날달걀 띄우는 걸 잊지 않았다.

그 당시 형 또래의 학생들은 KFC에서 콜라와 닭고기에 심취했지만 형은 달랐다.

형은 춘심에 들러서 공부도 하고 쪽잠도 자고 책도 읽었다.

형은 동생을 불러내서 춘심에 데리고 갔다.

형은 쌍화차에 날달걀을 풀어서 먹었지만, 동생은 날달걀을 접시에 잘 모셔두었다가 쌍화차를 거의 다 마셨을 즈음 찻잔에 넣고 쌍화차를 약간 버무려 날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입 속에 그대로 넣었다.

노고단에서 먹었던 날달걀 맛을 재현하고 싶어서였다.


형의 나이 열한 살, 동생의 나이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형은 너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었고, 그 쓴 기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깻잎 다방에서 4천 원을 내고 쌍화차에 날달걀을 띄워 먹었다.

2015년 서울 한복판에 날달걀을 띄운 쌍화차를 4천 원에 먹을 수 있는 구식 다방이 있다니.

"옛날 생각 나지 않냐?"

형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깻잎 다방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형은 대학 졸업 후 안국동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원이 된 후에 형은 회사 근처에 아지트를 개척했다며 'four season'이라는 다방에 동생을 데리고 갔다.

동생은, '네 개의 계절'이라는 뜻이면 season 뒤에 복수를 뜻하는 's'를 붙여야 한다고 깐죽대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집어치라'는 말과 주먹감자를 맞았다.

그곳엔 푹신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만화책과 잡지책도 있었다.

물론 형이 즐겨 마시던, 날달걀 얹은 쌍화차가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었다.

그 다방은 2008년까지 건재했다.

four season이 문을 닫은 후에도 형은 스벅이나 베네, 탐탐 같은 커피 전문점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쌍화차처럼 은은하면서도 진하고 칼칼하면서도 고소한 차를 파는 곳은 없으니 형이 갈 곳이 없는 게 당연했다.

찾아보면 쌍화차에 날달걀 얹어 파는 다방이 없겠냐마는 형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엔 그런 찻집이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무겁게 다가오는 미래를 염려하며 혼자 음미했던 쌍화차의 맛을 떨쳐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깻잎 다방의 쌍화차에 깻잎은 없었다.

마담도 깻잎머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동생은, 마담에게 왜 다방 이름이 깻잎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담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쌍화차에 날달걀을 버무릴 때쯤 되면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은은하면서도 진하고 칼칼하면서도 고소한 깻잎 향기가 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