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 이야기
"오늘은 피검사만 하시고 수술은 목요일에 하실 겁니다. 이건 문진표인데요. 의자에 앉아서 써주세요."
딸은 간호사가 준 문진표를 받아들고 아빠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아빠, 수술 준비하려고 물어보는 건데 내가 읽어드릴 거니까 아빠는 대답만 하면 돼. 알았지?"
"뭘 물어본다는겨?"
"아빠, 아까 몸무게 쟀을 때 얼마였지?"
"니가 봤잖여. 난 몰러."
"61이었나?"
"아녀. 병원 저울이 고장난겨. 니 오래비 진식이가 사준 저울 있잖여, 고걸로 내가 아침 저녁으로 빼먹지 않고 몸무게를 달아보는디 어떤 날은 64도 되었다가 어떤 날은 63도 되고, 고것이 숫자로 떡허니 박혀 나오니께 정확혀서 보기도 좋고, 니 오래비가 참말로 좋은 걸 선물을 줘서 …."
"61로 적을게. 요즘 아파서 몸무게가 줄었겠지. 그리고 특별한 병이 있는지 적는 건데, 고혈압, 당뇨, 천식 …."
"읎다고 혀. 이 나이에 아픈 데 있다고 허면 뭐혀?그냥 아래께 보건소 가서 혈압을 쟀는디 136이 나온겨. 내가 130은 넘은 적이 읎었는디, 니 엄마가 닭장 부서진 거 좀 손보라고 하도 성화를 혀서 내가 독감 주사 맞고 나서 말여 시방 삼봉이네 가게에서 철사를 사다가 손을 본다고 분명히 말을 혔는디 닭새끼들 도망친다고 또 잔소리를 혀서 내가 혈압이 올라가지고 …."
"그 정도면 고혈압은 아니니까 없다고 쓸게. 그거 말고 어디 다친 데나 상처는 없지?"
"다친 데가 뭐 있겄어? 읎어. 근디 너 시 살 때 우리 집에 불 났던 거 알어?"
"그랬어? 몰랐는데."
"겨울인디, 불이 났어. 변소만 홀랑 탔는디, 진식이는 혼자서 걸을 수 있으니께 엄마랑 뛰쳐 나갔고, 진영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땐디, 넌 걷지를 못혀서 내가 널 들고 뛰쳐 나가다가 벌러덩 넘어진 겨. 널 안 다치게 할려구 몸을 돌려서 땅바닥에 손을 못 짚고 등짝으로 떨어진겨. 근디 바닥에 요만~한 돌멩이가 하나 있었네. 별로 크지도 않았어. 근디 그것이 내 등짝에 팍 꽂힌 겨. 난 아픈 줄도 모르고 냅다 뛰었는디 …."
"그럼 지금도 상처가 있겠네."
"시방도 등짝에 자국이 있지. 재떨이만 혀."
"아빠 덕에 내가 산 거네. 난 왜 모르고 있었지?"
"말해 뭐 혀? 아픈 게 한 10년은 갔어. 시방은 아무렇지도 않어."
"알았어. 그럼 상처 없다고 쓸게."
"담배는 하루에 몇 개비 피우십니까?"
"담배? 담밴 끊었지. 안 펴."
"엄마가, 아빠 아직도 담배 피우신다던데?"
"그냥 안 핀다고 혀. 진영이 년이 시집을 안 간다고 니 엄마한테 전화혀서 유세를 허니께 내가 하도 속상혀서 그때 한두 개 핀 겨. 그리군 통 안 펴. 그냥 하루에 두 개라고 써."
"아까는 안 피운다며 두 개비는 피우시네."
"안 펴. 그냥 안 핀다고 쓰라니께."
"엄만 아빠가 열 개비는 피우는 것 같다고 하던데?"
"아녀."
"그럼 몇 개비라고 써?"
"안 핀다고 쓰라니께. 참 말이 많네 그려."
"알았어. 열 개비밖에 안, 피, 움. 이렇게 쓸게."
"허! 거 참, 가시나가 병원에다 시방 호구조사를 해다 바치는겨?"
"소화는 잘 되십니까? 아빠, 소화는 잘 되나?"
"그러니께 내가 뭐만 먹었다 허면 소화가 잘 안 돼가지고, 그려서 내가 보건소에 갔던 거 아녀. 내가 밥을 먹다가도 진영이 년 시집 못 간 거 생각허면 밥맛이 뚝 떨어지고 니 신랑, 그 누구여 강서방 사업 힘들다고 허면 기운이 쭉 빠져서 밥맛이 떨어지고…."
"강서방이 언제 사업 힘들다고 했어? 괜찮아. 먹고 살 만해. 걱정 마셔. 설사 같은 건 안 하지?"
"설사? 추석 때 강서방이 준 거 그 뭣이냐, 바다풀로 맹근 거, 무슨 환인가 뭔가 하는 거, 그거 먹으면 설사도 안 허고 소화가 잘 된다고 혀서 하루도 안 빼먹고 정확허게 열 알을 세서 먹었는디, 눈도 침침헌디 알갱이도 잘잘하게 맹글어놔갖고, 그러니께 시방 한 달 먹은 거지? 근디 먹으나 마나여. 니 오래비네 집 전세 끝내고 집을 사야 허는디 살 만 허면 이사 가고 살 만 허면 이사 가고 혀서, 니 오래비 생각허면 그 날은 꼭 설사를 하는겨. 니 오래비 생각을 안 할라고 혀도 …."
"오빠는 일부러 전세 사는 거랬어. 그래서 설사를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소화는 잘 되는 편이라고 쓸게."
"이 썩을 가시나야, 시방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혔는디 뭘 들은겨?"
"알았어. 근데 소리는 왜 질러? 잠은 몇 시간 정도 자나요?"
"어떨 땐 다섯 시간도 자고 어떨 땐 여덟 시간도 자고, 대중 읎어."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몇 시간 주무시냐고? 그냥 단답형으로 좀 말해봐. 시간만 길어지잖아."
"뭐가 답답혀? 답답한 소리는 니가 하고 있잖여. 근디 진영이랑 너는 가끔 전활 허는디 진식이는 맏이라는 눔이 뭔 큰 일 있을 때만 전화허고 …."
"그냥 일곱 시간이라고 적을게."
"뭐가 그렇게도 질문이 많냐? 아직 안 끝났냐?"
"거의 다 했어."
"그냥 다 읎다, 다 괜찮다 혀.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말허기 시작하면 칠십 넘은 노인네가 아픈 데가 한두 군데겄어? 그냥 아픈 데 읎다 허고…. 그리구 이거나 받어봐."
아빠는 흰 봉투를 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돈이잖아."
"니가 매달 보내준 돈 있잖여. 시방 절반만 쓰고 절반은 저금했던 거여. 수술허면 큰 돈 들 테니께 갖고 있다가 수술비에 보태서 내."
"그 돈은, 진짜 조금인데, 아빠 용돈하시라고 보내드린 건데 안 쓰면 어떻게 해?"
"절반은 썼다고 했잖여. 뭘 들은겨?"
"아빠 수술비는 우리 3남매가 준비 다 해놨어."
"질문 다 혔으면 나가서 담배 한 대 피고 있을 테니께 그거 어여 내고 기다려. 뭔 눔의 검사는 한다고 혀서 어저께 저녁부터 암 것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파서 앉아 있지도 못하겄네. 아까 터미널에서 내려갖구 너 만난 데 있잖여, 그 앞에 큰 길에 옥수수를 파는디 을매나 먹고 싶었는지 …."
딸은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게 없네."
"김형국님 보호자분, 아직 다 안 쓰셨어요?"
"아! 네, 다 썼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는데 …."
"이제 피검사 받으셔야 하는데 또 담배를 피우시면 …."
딸은 간호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뛰어 나갔다.
"아빠, 담배 좀 그만 피우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