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 이야기
"현주야, 준비 다 됐지?"
"네, 할아버지."
"어디 보자. 허허, 귀마개도 해야 돼. 할아버지도 니 나이 때 귀마개 없이 나갔다가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뒤에서 부르는데 듣질 못한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추워서 귀가 딱딱하게 얼었던 거야. 아무 소리도 안 들렸던 거지. 그 딱딱하게 언 귀를 다시 녹이느라 집에 다시 들어와서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그 안에 귀를 넣고 두 시간이나 기다렸지 뭐니. 허허."
"알았어요. 오늘은 몇 마리 잡을 수 있어요?"
"글쎄다. 어젯밤에 굉장히 추웠으니까 삼십 마리는 잡을 것 같은데."
"그럼 할아버지, 한 마리는 준석이네 주는 거죠?"
"물론이지. 허허."
할아버지는 낫을, 손녀는 푸대를 들고 문을 나섰다.
집 밖에 나온 지 5분도 안 되어 할아버지의 수염엔 고드름이 맺혔다.
옷을 여러 벌 껴입고 목도리, 장갑, 두 겹의 양말, 귀마개, 털모자 등 가능한 모든 방한 장비를 다 갖추었지만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겨울 바람이 스며들었다.
암사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손녀는 해마다 1월이면 할아버지가 강 건너까지 가서 오리를 잡아 오는 걸 여러 번 보았는데 열 살이 된 해에는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한 것이다.
강 건너편 절벽 밑, 그러니까 워커힐 앞 한강 호텔의 아래가 이른 바 포인트다.
할아버지와 손녀는 새벽 일찍 빙판이 된 한강을 걸어서 건너간 후 해가 뜰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오리 잡기 작업을 한다.
잡은 오리는 푸대에 담아 줄로 묶어 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기온은 영하 20도.
절벽 밑에 오리들이 많이 사는데, 낮에 살짝 녹은 한강물에서 유유히 수영을 즐기다가 밤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오리들은 얼음 속에 갇히고 만다.
얼음 속에 갇힌 오리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다리가 얼음과 함께 얼어붙는 바람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오리들이 가장 신선할 때, 얼어 죽기 직전의 오리들을 수확하려면 해가 뜨기 전 가장 추운 시간에 나가야 한다.
가을 추수 때 익은 벼를 베듯 왼손으로 오리 목을 잡고 오른손에 든 낫으로 오리의 두 다리를 베면 오리의 몸통을 수확할 수 있다.
벼를 벨 때보다는 더 세게 힘을 주어 빠르게 '탁'하고 끊는 식으로 자른다.
오리 다리의 뼈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통의 피가 밑으로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재빨리 다리를 잘라낸 후 오리의 다리를 손으로 잡아서 거꾸로 들고 다리의 절단면에 검은 비닐봉지를 덮고 끈으로 쨍쨍하게 묶어준다.
아직 완전히 얼지 않은 오리의 피는 젤리처럼 몸 속에 남는다.
이렇게 오리를 잡는 방법은 한강물이 꽁꽁 어는 한 달 반 정도만 가능한 것이다.
오리들은 살짝 얼어 있는 곳에서 놀기를 좋아하는데 저녁에 해가 떨어지면 꽁꽁 언 곳과 살짝 언 곳의 경계선부터 급속하게 얼기 때문에 오리들의 발이 묶이는 것이다.
마치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하고 빠져들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와 비슷한 상황이다.
오리의 몸 속에 있는 뜨거운 피는 한약 재료상에 판다.
몸통은 요리를 해서 먹는다.
두 다리는 얼음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몸통과 함께 요리로 맛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2월 중순이 되면 수확하고 남은 오리 다리들을 배를 타고 나가 얼음을 살살 깨면서 뜰채로 건져 올릴 수 있다.
그 다리들은 닭발과 섞여 발 요리로 팔린다.
그것 또한 별미다.
지금도 천호동 뒷골목에는 '발발이'라는 이름의 발 요리집이 있는데 30년 넘게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다.
198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오리집 '허허 오리' 식당에는 각지에서 일부러 오리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때만 해도 오리 요리가 성행하지 않았던 때라 허허 오리는 좀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의 고급 요리였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오리를 수확하러 가기 위해 일찍 주무셔야 했기에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오후 3시면 허허 오리 식당의 문을 닫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오리를 잡은 손녀는 자기가 직접 잡은 오리로 배부르게 먹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현주야, 요즘에도 오리 잘 먹냐?"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요즘엔 겨울이 옛날만큼 춥질 않아요. 한겨울에도 한강물이 얼지 않아서 오리를 잡을 수가 없어요. 지구 온난화가 문제예요."
할아버지는 '허허'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