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진정한 배려를 위하여

by 문기사

어떤 회사 팀장님은 팀원들에게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는 미리 공부한다는데 우리 팀장님은 그렇지 않다.

팀장님은 자신이 맡은 직접적인 업무 외에는 관심 가질 여력이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 팀장님은 이마가 약간 시원한 1남 1녀의 아버지이다.


"유대리, 유대리의 존경하는 팀장님이 말야, 요즘 몸이 좀 허해진 거 알지?"

"네."

"내가 요즘 말야, 삼일이 멀다 하고 가 아파서 말야."

"네. 불편하시겠어요."

"그래서 말야, 내가 길 건너 건물에 병원 많은 데 있잖아. 거기 2층에 한의원 있는데 거기 가서 진료받고 한약 좀 지어놨는데 말야, 그 의사가 잘 하는 거 같더라고. 내가 초등학교 때 말야, 어머니 따라서 한의원 가보고 처음 가보는 건데 말야, 약이 다 됐다고 가지러 오라고 연락이 왔네. 내가 얘기해놨으니까 유대리가 가서 받아 오고, 결제는 다 해놨으니까 말야, 받아만 오면 돼. 그리구 이거 내 차킨데 말야, 지하 3층 A구역에 있으니까 차에다 아예 좀 실어놓고 와. 내 차 번호 알지? 1369."

"."

"왜? 뭐 문제 있어?"

"아뇨. 그게 아니고."

"그럼 얼른 갔다 와. 그리고 유대리도 말야, 요즘 머리 아프단 소리 자주 했지? 간 김에 진료 한 번 받아봐. 그 의사가 말야, 잘 하더라구. 침 한 번만 맞아도 아마 훨씬 나아걸."


좋은 의사를 추천해주는 팀장님의 배려가 감동스럽다.


근무 시간에 한의원 가서 팀장님 개인적인 약을 타오라고? 그걸 왜 나보고 하라는 거야? 그리고 내가 팀장님 때문에 머리가 더 아픈 건데 그 사실은 모르는 건가? 개인적인 일 하려면 조용히나 하시지 왜 날? 날 그만큼 신뢰한다는 거야, 아니면 팀장님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하는 거야?


어떤 회사 팀장님은 업무 시간 외에는 팀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전화나 카톡 등을 될 수 있는 한 자제한다는데 우리 팀장님은 그렇지 않다.

팀장님은 다음날 회사에서 얘기해도 될 일에도 무슨 난리 난 것처럼 팀원 전체를 톡방에 소집하여 어색한 유행어를 남발하곤 한다.

우리 팀장님은 외근직이 아닌데 외근을 자주 나가신다.


"팀장님, 아까 외근 나가셨을 때 사내 도서관에서 왔었는데 팀장님이 사내 도서관에서 빌려가신 책을 한 달 넘게 반납 안 하시고, 문자도 여러 번 보냈는데 응답이 없다면서 직접 …."

"걔네는 뭘 그런 거 가지고 직접 오니? 시간이 남아돈대? 그나저나 유대리, 사실은 내가 그 책을 잃어버렸는데 말야, 혹시 유대리네 집에 그 책 없어? 베스트셀런데."

"제목이 뭔데요?"

"제목? 뭐더라? 1. 뭐, 그런 건데 말야."

"팀장님 책상 위에 요청서 올려놨는데 거기 제목 있는 거 같던데요."
"아! 맞다. <회사 다니면서 알바로 1억 벌기>."

"회사 다니면서 알바로 어떻게 1억을 벌어요?"

"이 책 쓴 사람은 말야, 진짜 1억 벌었대. 어쨌든 말야, 유대리 이 책 없어? 베스트셀런데."

"없어요."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사볼래? 괜찮은 것 같던데. 사서 읽은 다음에 말야, 그걸로 반납하면 어때? 어차피 유대리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내가 밥 한 번 살게."


좋은 책을 권하는 팀장님의 배려가 감동스럽다.


책은 내 돈으로 사고, 난 그 책을 대충 빨리 읽고 반납하고? 왜 밥을 한 번만 사겠다는 거야? 요즘 책이 만 원은 다 넘는데 사내 식당에서만 사도 최소 세 번은 사야지. 한약 심부름 다녀올 때 툴툴거렸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나?


어떤 회사 팀장님은 팀원들 생일에 모바일 상품권 정도라도 보내주며 적당한 거리에서 관심을 가져주기도 한다는데 우리 팀장님은 그렇지 않다.

팀장님은 팀원들 생일 같은 건 관심이 없으면서도 회사 일 얘기라면 점심 식사 때나 회식 때도 멈추지 않는 애사심이 돈독한 분이다.

우리 회사는 9층에 사내 식당이 있는데 사원증을 태그하면 식사를 3,500원에 할 수 있다.


"유대리, 오늘 점심 말야, 유대리 사원증으로 태그 좀 해줘."

"네."

"왜 그렇게 쿨해?"

"어저께도 제가 했잖아요."

"내가 사원증 분실해서 그런다고 말했잖아. 내일 재발급될 거야."

"네."

"사원증 나오면 내가 일주일 내내 사줄게."

"안 그러셔도 돼요. 오늘 거까지 이틀치만 사주시면 돼요."

"알았어."

"그런데 팀장님, 지난번에 <회사 다니면서 알바로 1억 벌기> 책 제 돈으로 사서 반납하면 밥 사주신다고 했잖아요. 그게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은데요."

"근데 말야, 유대리 그 책 읽긴 읽었어?"

"자세히는 못 읽었다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도서관에서 독촉 문자 또 왔다고 하셔서 대충 읽고 반납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회사 다니면서 알바로 1억 벌려면 우선 회사를 충실하게 다니는 게 중요하다.' 뭐, 그런 내용 있었는데 말야, 기억 나?"

"아뇨."

"밥 한 끼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선 말야, 회사 생활을 충실하게 해야 돼. 나도 대리 때 말야, 공차장님 알지? 법인영업부. 그때 공차장님 과장일 때 말야, 내가 바로 이 식당에서 태그해드린 것만 다 모으면 그게 1억은 걸."

"그걸 왜…?"

"그러니까 말야, 그걸 아끼면 말야…, 1억은 벌 수 있다는 뭐, 그런…."

"태그했어요. 많이 드세요."

"난 비빔밥 먹을 건데 유대린 돈가스 먹을 거지?"


좋은 메뉴를 권하는 팀장님의 배려가 감동스럽다.


줄 맘만 먹으면 현금으로라도 줄 수 있잖아. 내 월급으로 팀장님 점심값까지 책임져달라는 거잖아. 사원증이 무슨 체크카드야? 사원증 발급되면 1억이라도 인출해주겠다는 거야, 뭐야? 회사 다니면서 알바로는 도저히 1억을 벌 수 없다고 한 것 때문에 단단히 삐쳤군.


아놔.

금요일에 스크린골프 치러 가자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유대리는 팔로우가 약해서 피니시가 안 좋다는 둥 지적을 하실 텐데, 팀장님 인생도 팔로워가 없어서 피니시가 안 좋을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깨닫게 해드려야 할지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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