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1979

by 문기사

시험도

망치고, 점심도 맛이 없고, 선생님께 꾸중 듣고, 하교길에 비가 와서 박스 뒤집어쓰고 귀가했더니

집에선 아빠와 엄마가 싸우고 있다.

울고 싶어졌다. 울기 시작했다. 울었다. 마구 울었다.

눈물이 바다가 되었다.

눈물바다.

(후략)

<눈물바다>

서현 글, 그림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생일에 미역국 같은 건 끓여주지 않고 선물 같은 것도 주고받지 않았다.

부모님은 돈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셔야 했고, 그래도 퍽퍽한 살림살이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엄청난 출혈이 요구되는 과업은 도모하지 않는 걸로 암묵적 약속이 되어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생일을 아무 일 없는 날처럼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춘기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난 아침식사를 대충우고 등교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작은 선물이라도 줄 거라고 기대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학교는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는데, 고등학교 형들이 학교 건물 유리창을 모두 깨놓고 건물 안에서 창 밖으로 의자와 각종 집기들을 집어던져서 건물 밖은 엉망이 되었고 운동장 한가운데에도 쓰레기들을 일부러 갖다 버린 듯 난장판이 되었다.

엉망이 된 학교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 생일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다.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보도되지 못한 사회 구석구석의 일탈은 생각보다 심했다.

국민들은, 빨갱이들의 짓이라며 거리로 뛰쳐나와 북한을 규탄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애도했다.

텔레비전은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대통령 서거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날,

내 생일

1979년 10월 27일은 학교 수업도 엉망이 되었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선생님들이나 학생들 모두 우왕좌왕했다.

곧 전쟁이 날 테니 한가하게 공부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학도병으로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온 나라는 시끌벅적했다.

모든 국민은 울었고 나도 울었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의 생일은 황망함의 터널로 그렇게 빠져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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