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하는 이유

1988

by 문기사

존은

어느날 학교에 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악어 때문에 가방을 물어뜯기고 간신히 도망치느라, 또 다른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사자 때문에 나무 위로 올라가 사자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다가, 또 다른 어느날 큰 파도가 밀려와 쓸려가지 않으려고 난간에 매달려 있느라 학교에 지각을 했다.


선생님은 존의 말을 듣고선 이 동네엔 악어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이 동네엔 사자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이 동네엔 큰 파도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존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벌을 주었다.


존은 또 다른 어느날 학교에 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학교에 지각하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보니 선생님이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잡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후략)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그림



1988년 가을 어느날

학교 가려고 성내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맹인이 하모니카를 불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어느날

학교 가려고 성내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장사꾼이 만년필을 팔고 있었다.

이상했다.

또 다른 어느날

학교 가려고 성내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그 맹인이 하모니카를 불며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또 다른 어느날

학교 가려고 성내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그 장사꾼이 만년필을 팔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 맹인이 그 장사꾼이었다.

어느날은 맹인으로, 다른 어느날은 두 눈 잘 보이는 장사꾼으로, 또 다른 어느날은 맹인으로, 또 다른 어느날은 두 눈 잘 보이는 장사꾼으로.


그가 맹인일 때, 아니 맹인 역할을 할 때 일부러 그의 앞을 가로막아봤다.

그는 더듬거리는 척하면서도 나를 유유히 피하여 지나갔다.

까만 썬글라스 안 쪽의 눈이 분명히 멀쩡한 것 같았다.


그가 맹인일 때 그는 손에 든 구걸 바구니조차 들 힘이 없는 듯 구부정하게, 불쌍하게 보이려 애썼다.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찬송가는 항상 똑같은 곡이었고 연주 실력은 형편 없었다.

그가 장사꾼일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래 성내역에서 노점을 했는데 팔팔올림픽 한다고 노점상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바람에 장사할 곳이 없어서 이렇게 전철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팔팔올림픽 하는 건 좋은데 우리 같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어찌 살라고 이러는 겁니까? 여러분이 만년필 한 자루만 사주신다면 …."

그는 '팔팔'이라는 단어에서 유난히 침을 튀겼다.


그는 어떤 직업이 벌이가 더 좋은지 실험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구조와 정치권력에 다양한 방법으로 항거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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