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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Dec 22. 2015

그땐 그걸 몰랐다

1986

아침에

오빠와 동생이 밖에 나가보니 나무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그 구름을 따서 엄마에게 갖다주었고 엄마는 그것으로 구름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름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45분.

아빠는 회사에 지각할까봐 구름빵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아빠가 출근한 후 구름빵을 먹은 남매는 몸이 구름처럼 떠올라 하늘을 날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거른 아빠 생각에 남매는 구름빵을 들고 아빠를 찾아갔다.

하늘을 날아서.

출근길은 빽빽한 차들정체가 심했다.

아빠는 만원버스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후략)

<구름빵>

백희나 글, 그림



대학생이 된다는 마음에 들떠서 잠을 설쳤지만 은근히 긴장되어서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직장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시간 내기가 어려워 개인 사업하시던 아버지가 입학식에 함께 가시기로 했었다.

이럴 수가.

아버지도 어머니 모두 안 계셨다.


형과 나는 어렸을 때 '땅 따먹기' 놀이를 자주 했었다.

땅 따먹기는, 자기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작은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세 번 튕기어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오는 만큼의 영역이 자기 땅으로 확장되는 놀이이다.

돌멩이를 과감하게 멀리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다시 돌아올 만큼의 힘 조절도 중요하다.

돌멩이를 너무 멀리 보내면 다시 돌아올 성공률은 떨어지지만 만약 성공하면 대박이다.

돌멩이를 너무 가까이 보내면 다시 돌아올 성공률은 올라가지만 성공해도 이득이 많지 않다.

나는 돌멩이를 가까이 보내어 조금씩 내 영역을 확장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대로 형은 무모할 정도로 돌멩이를 멀리 보내어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성격이 인생에도 반영되었다.

형은 대학교에 들어간 후 자신이 확보해놓은 좁은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방에 멀리 돌멩이를 던져버렸다.

형은 대학교 2학년 때 전대협 간부가 되었다.

'빼앗긴 땅'을 복구하기 위해, '좁은 땅'을 획기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형의 책꽂이에는 '주의'니 '사상'이니 하는 글자가 섞인 제목의 책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형사들이 우리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형이 귀가하면 체포하려는 것이었다.

형은 형사들 때문에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다.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날도 미리 전화하여 형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후 도둑처럼 담을 넘어 숨어 들어왔다.


형은 1986년 3월 4일에 체포되었다.

정부가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형이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부모님은 그날 밤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고 내가 자는 사이에 형을 면회하러 가셨던 것이다.

3월 5일. 대학교 입학식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쯤 부모님은 군대로 끌려가는 형을 배웅하느라 잠 한 줌 못 주무시고 경찰서 밖에서 추위에 떨고 계셨을 것이다.

형은 그 길로 군대에 끌려갔다.


평생 한 번뿐인 대학교 입학식날인데.

다른 학생들은 부모 형제가 함께 와서 사진 찍고 박수 쳐주고 하는데.

아무도 축하해주는 이 없는 쓸쓸한 운동장에 고약한 봄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날.

1986년 3월 5일.

끌려가는 큰 아들도, 대학교 입학하는 작은 아들도 모두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신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셨을까.

더구나 내 고등학교 졸업식도 일하시느라 바빠서 참석 못하신 걸 많이 미안해하고 계셨었는데.


무슨 줄인지도 모르고 서 있다가 한 칸씩 당겨지더니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지난 날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느꼈던 아쉬움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날 아버지는 나 못지않게, 아니 나보다 더 크게 아쉬워하셨을 것이다.


아쉬움.

아쉬움을 어찌하지 못하는 아쉬움.

아버지로 산다는 건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 무 같은 것.

그땐 그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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