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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Jan 03. 2016

이별의 진짜 이유

1989

어느날  

아침 카밀라가 잠에서 깨었을 때 몸에 온통 줄무늬가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카밀라의 몸에 생긴 줄무늬는, 자기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그녀의 나약한 자존감이 그 원인이다.

카밀라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카밀라에게 의사, 과학자, 심리학자, 알레르기 치료사, 약초학자, 영양학자, 무당, 주술사, 힌두교 승려, 수의사 등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치료를 시도해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후략)

<줄무늬가 생겼어요>

데이빗 섀논 글, 그림



나는 그녀를 '디셈버'라고 불렀다.

우리가 만난 게 12월이어서 그런 거였지만 그보단 12월처럼 약간 외로운 느낌을 갖고 있어서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종로의 창신동 무허가 촌 맨꼭대기 집에 살았다.

종로3가 세운상가 길 건너편에는 밤이 되면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떡볶이, 홍합, 순대, 그리고 25도짜리 진로 소주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허기진 배를 좀 채우고 그녀의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

30분 가까이 올라가면 멀리 청계 고가도로와 동대문 운동장과 남산이 보였고, 그렇게 그녀의 집 앞에 다다르면 숨이 차서 포장마차에서 먹은 홍합 국물이 되올라오곤 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후 그녀의 집 앞에서 고작 포옹 정도만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것도 누가 볼까 두려워 아주 짧게.

그게 다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988년 12월이었다.

우리는 그 후 10개월쯤 사귀었다.

그녀가 홍제동으로 이사간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1989년 9월쯤 우리는 사직공원의 벤치에 앉아 사직터널 쪽으로 한 움큼씩 빨려들어가는 석양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공놀이 하는 꼬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솜사탕 가루처럼 가을 하늘로 퍼져나갔다.

가을인데도 더웠다.

 

우리는 그날 하루 부쩍 대화가 없었기에 가슴 속 답답함 때문에 더 더웠던 것 같다.

그녀가 손수건을 주었다.

수돗가로 가서 손수건에 물을 적신 후 돌아와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얼굴에 묻힌 도심의 먼지를 닦았다.

나는 뽀얗게 맑아진 얼굴을 들고 말했다.

"가자."

그녀와 나는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 없이 일어서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살 아프기 시작했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부추전을 너무 많이 먹은 게 문제인 것 같았다.

체질상 부추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배가 아파도 너무 아팠다.

금방이라도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모두 문 앞에 몰려 있어서 열어주지 않으면 모두 압사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혼자, 가."

"왜?"

"급한 일이, 생겼어. 나중에, 말해줄게."

내 몸은 이미 그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멈춰서서 나를 계속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공원 끝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댓가가 크긴 했지만 만족도 컸다.

 

그녀가 혹시라도 기다릴까봐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보지 못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사직공원 화장실 앞에 앉아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그게 끝이었다.

나중에 말해주기로 한 급한 일의 경위도 끝내 말해주지 못했다.


세계사의 전쟁과 쿠데타는 배가 아픈 게 진짜 이유라는 점에서 볼 때 나의 이별의 이유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전쟁과 쿠데타의 배 아픈 원인은 상대적 궁핍에서 온 외부의 트러블이었고 나의 배 아픈 원인은 상대적 풍요에서 온 내부의 트러블이라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학자나 정치인도 '배가 아파서'라고 말하지 않듯이 나도 '배가 아파서'라고 말하고 싶지 다.


우리 남자는 그것을 '가오'라고 한다.

내 부실한 장의 해방과 맞바꾼 이별의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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