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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Mar 14. 2016

사람의 뇌는 그 사람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히든 브레인

우리 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숨겨진 뇌' 정도 되겠다.

무슨 말인지 더 모를 것 같다.

'무의식적 편향'이라는 말도 쉬운 설명은 아니지만 차라리 이게 나을 것 같다.


우리의 뇌는 수없이 많은 인지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판단을 한다.


어느 회사 면접시험장에 세 개의 대기실을 설치하고 세 명의 구직자를 각각 들어가도록 했다.

첫번째 방은 혼자서 대기하도록, 두번째 방은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 곁에 앉아 있도록, 세번째 방은 평균 체중을 가진 사람 곁에 앉아 있도록.

평가자들에게 그 세 명의 구직자를 평가하도록 했다.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 곁에 앉아 있는 구직자는 다른 두 대기실의 구직자들과 비교해 전문적인 기술과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했다. (34~35페이지)


슬로프 중간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위에서 '쉭쉭' 소리가 났다.

스키 한 짝이 내려오고 있었다.

스키어는 없고 스키만 한 짝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었다.

무척 빠른 속도였다.

순간 생각했다.

누군가 정상 부근에서 잠깐 스키를 벗었거나, 아니면 넘어지면서 스키가 벗겨졌을 것이다.

나를 향해 내려오는 스키는 나를 사냥감으로 생각하는지 마치 창처럼 날아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면상을 강타할 것 같았고, 내가 용케 피하더라도 내 아래 쪽에 있는 누군가가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약간 몸을 날려 스키를 잡았다.

어느 영화에서 성룡이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신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분명 그것과 비슷했다.

물론 두 손으로 낚아챘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스키를 잡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기술이었다.


나의 '무의식적 편향'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본의든 아니든 스키 한 짝을 먼저 내려보낸 주인공은 조금 있으면 그 스키를 찾으러 올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난 왜 그랬을까?

그 스키 한 짝을 들고 게걸음으로 위로 위로 올라갔다.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정의감인지, 주인에게 칭찬받으려 하는 공명심인지, 아니면 이런 위험한 짓거리를 한 주인을 꾸짖으려는 오지랖인지.


신고 있던 스키의 엣지를 세우면서 쭈뼛쭈뼛 올라간 시간은 대략 1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정상에 올라가자마자 똑같은 스키 한 짝이 거치대에 외롭게 엎드려 있었다.

스키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아니,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나의 '무의식적 편향'이 '의식적 각성'으로 바뀌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정상 부근의 휴식 장소에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간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내가 들고 온 짝 잃은 스키에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치대에 혼자 삐딱하게 기대어 있는 한 짝의 스키에게 짝을 찾아주고 조용히 내려왔다.

왜 그랬을까?


2002년 3월 13일 태평양을 항해하던 인시코호에는 수만 갤런의 디젤 연료가 실려 있었는데 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19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게 되었다.

다행히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는데 호크겟이라는 강아지 한 마리는 배에 남은 채 실종되었다.

태평양을 표류하는 버려진 배에 남겨진 외로운 강아지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아지를 구조하는 데 필요한 6~8만 달러의 비용을 충당할 만큼의 후원금이 동물애호협회로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후원금이 들어왔고, 비행기, 배, 첨단 감시장비까지 동원하여 호크겟을 결국 구조했다.

그해 5월 2일, 호놀룰루에 도착하는 호크겟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플래카드와 화환을 설치했고 방송국과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다.

호크겟의 이야기는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어떻게 그 많은 미국인들이 그런 황당한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을까.


참상이 밝혀졌는데도 세계가 무관심했던 참사들이 20세기에 놀라울 정도로 많다.

아르메니아인들은 1915년 2백만 명이 희생되었고 유태인들은 홀로코스트로 6백만 명이 희생 당했다.

콩고에서는 2000년부터 10년 동안 5백만 명 이상이 기근과 질병으로 죽었다.

2000년 무렵 남수단에서는 2백만 명 이상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우리는 어떤 재난에서 20명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경우, 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경우보다 20배 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대규모 수난이 가져오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별로 능숙하지 못하다. (428~440페이지)


사람은 자신의 명석함을 과신하지만 사람의 뇌는 그 사람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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