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배웠으면 써먹어야지”

써먹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시선, 당장 안써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by 조슬기


“일본어를 그만큼 공부했으면 썩히기 아깝지 않느냐.”

“그 실력이라면 번역가로도 나설 수 있지 않겠느냐.”

“언어는 안 쓰면 금세 잊어버린다. 차라리 통역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떠냐.”


외국어를 배운 사람에게 사회는 유난히도 엄격하다.

처음에는 ‘그런 걸 배워서 어디에 쓰겠느냐’며 비효율을 지적하다가, 일정한 실력이 쌓이면 곧바로 “그렇다면 어디에든 활용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민다. 정작 그들이 말하는 ‘활용’이 무엇인지, 또 그 길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나의 전공은 공학이었다. 주변에 외국어를 취미로 배우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재미로 일본어를 이어갔을 뿐,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번역과 통역 관련 직업을 권하시기 시작했다.


“번역은 카페에서도 할 수 있다더라.”

“통역은 프리랜서로도 가능하다.”

“가이드가 되면 여행하며 일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


본래는 ‘쓸모없다.’ 하시던 분들이, 어느새 내 전공조차 잊으신 듯 언어를 업으로 삼을 것을 권유하셨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찌 말처럼 쉬우랴. 마치 번역과 통역이 남는 시간에 가볍게 해도 되는 일인 듯 이야기하실 때마다,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무엇보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그러한 기회를 누가 선뜻 내어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수없이 말해야 했다.


“저는 일본어를 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언어는 안 쓰면 잊어버린다.”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활용하지 않느냐?”


언제부턴가 나는, 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업으로 삼아야만 의미가 있다는 묘한 사회적 기대 속에 갇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학생 시절, 방학마다 홀로 일본 여행을 떠났다. 언어 덕분에 일본은 마치 ‘언어만 다른 또 하나의 국내’가 되어 버렸다. 불편은 없었고, 오히려 취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교사가 된 뒤에도 우연히 그 빛이 발한 적이 있다. 학생 대상 일본 연수에 인솔자로 동행했을 때였다. 도요타 자동차 공장 견학에서 가이드는 기계 용어를 잘 몰라 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즉석에서 학생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는데, 그 경험은 내겐 작은 보람으로 남았다. 훗날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이드에게 마이크를 뺏어서 통역을 다 해버렸다.”고 와전된 내용을 떠벌렸지만, 사실은 단순한 부탁에 응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일상은 일본어를 반드시 써야 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나 특별한 순간이 오면, 언어는 언제든 장롱 속에서 꺼내 쓰는 물건처럼 제 역할을 했다. ‘안 쓰면 잊힌다.’는 말에 나는 반대한다. 당장은 잊는 단어가 생겨도, 언어의 큰 틀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왜 업으로 삼지 않느냐, 왜 써먹지 않느냐.”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게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나는 또 다른 틀에 갇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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