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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pr 19. 2019

그 자리 좋은 줄 누가 모르나요? 단지 못 갈 뿐이죠

[김 실장은 왜 그럴까⓷]


"김 기자, 이직할 생각 있으면 기업 말고 공공기관으로 가."



김 실장은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15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고, 그 후 10년은 공공기관에서 일했다.


'행시 라인' 없이 경력으로 공공기관에 들어간 김 실장은 10년을 쭉 과장으로 일했다.


10년 전 같은 과장이었던 동기들은 10년 후 국장이 됐고, 실장이 됐고, 차관이 됐다.


행시 라인은 '넘사벽'이었고, 김 실장은 결국 사표를 냈다.


언론인 경력과 공무원 경력으로 기업 대관 업무와 홍보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김 실장의 '희소가치'는 이직 시장에서 그의 '몸 값'을 끌어올렸다.



[사진=pixabay]



"공공기관에 일단 경력, 3급 이상 공무원으로 들어가면 연봉이 적지 않아. 이것저것 다 붙이면 일반 월급쟁이보다 더 받는다고. 그런데 일은 기자질 할 때보다 30%는 더 줄지."



누가 공공기관 좋은 줄 모르나요. 안가는 게 아니라 못 갈 뿐이죠.


기자 생활을 10년 쯤 하다 보니 '기렉시트'를 선언하는 기자들이 주변에 하나 둘 씩 생겨난다.


○○기획 홍보 대리

△△소프트 홍보 팀장

□□그룹 홍보 부장

기업 홍보

공공기관 홍보

에이전시 홍보


결국 기자를 그만두면 갈 곳은 홍보뿐인가요.


기업을 '감시하는(까는)' 입장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로 거듭나는 아이러니란.




"기자 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내 멋대로 살았으니 이젠 돈 벌어야죠."


[사진=pixabay]



진보 언론사 기자 일을 하다가 굴지의 S그룹 홍보로 넘어가 뒷발이 무성했던 한 홍보맨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10년 동안 기자질 하면서도 내 멋대로 살지 못하는 저는 뭘까요.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던 기자생활. 정신을 차려보니 그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월급쟁이더라.


"돈 벌려고 일해? 기자 정신없어?"라고 다그치는 데스크 앞에서 '기업에서 광고 당기는 네 모습 보면서 소명이 생기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부장, 제 마음의 소리가 들리시나요?



김 실장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고액 연봉을 제시한 기업들을 포기하고 택한 곳은 공공기관 산하 조직이다.


[사진=pixabay]


"지금 내 나이에 고액 연봉 받고 기업으로 들어가면 몇 년이나 있겠어. 한 이년 쯤. 돈 뽑아 먹으려고 엄청 굴리겠지. 그냥 오래 가는 일을 택했어. 여기선 일단 5년은 보장 되거든."



환갑 언저리 나이에 내린 가장 현명한 결정은 '가늘고 편하며 길게!'.


기자가 나에겐 천직인 줄 알았는데.


김 실장님,

공공기관에 어디 좋은 자리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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