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건네는 질문 6.
어떤 고등학생이 있었어.
역사가 긴 명문 남자 기숙 고등학교에 다녔지. 이 고등학교를 거치면 유명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 아이 역시 지금껏 그래왔듯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를 했지.
그러던 어느날 한 국어선생님을 만나게 된거야. 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쳤어.
첫 수업에서 그가 학생들에게 시킨 것은 시를 수치화해 표현하는 시에 대한 설명 책장을 찢는 일이었다.
그렇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아이는 시를 알게 되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어.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했지.
그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은 연기였어. 그렇게 연극무대에 섰지.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잔뜩 화가 나서 아이를 더 엄격한 육군 사관학교로 전학을 보내기로 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의사가 되길 원했거든. 그날 저녁 그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꿈을 가진 대가는 참혹했지.
그 아이를 죽음을 이끈 것은 아버지였을까 아이에게 꿈을 품게 한 선생님이었을까?
어젯밤 너를 재우고 혼자 영화를 봤다.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였지.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밤 12시가 훌쩍 넘도록 TV를 끄지 못하고 마지막 장면까지 봐 버렸어. 다음날 어떤 괴로움이 닥칠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교실을 떠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이 책상을 밟고 일어서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었어.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상을 밟고 일어서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얘기했거든. 그 핵심은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라는 메시지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다. 그 마음속 울음은 내 자신을 향한 울음이기도 했지.
나 역시 꽤나 엄격한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왔어. 1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통학하며 아침 7시반부터 밤 10시반까지 공부를 했지. 치열한 공부를 했다. 경쟁에 매몰됐던 어린 난 브레이크 없이 질주를 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온종일 책상에 앉아 시험에 나올 내용들을 암기하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었어.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니 정작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 지 몰라,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찾는 지 조차 몰라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 파릇파릇한 젊은 날 넘치는 에너지를 책 속에 갖혀 경주마처럼 내달리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에겐 왜 저런 가르침을 줄 선생님이 없었을까.
내 지나간 젊은 날에 대한 후회였고, 누구를 향하는 지 모를 원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겠단 작은 불씨를 지금껏 안고 살고 있는데, 그 소소한 꿈이 가져오는 가혹함에 대한 슬픔도 내 울음 속에 담겼다.
꿈을 가진다는건 꼭 멋지기만 한 일일까? 무엇을 하고 싶다는 그 방향성은 아주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오곤해. 그리고 그 불씨를 끌어안고 살아가기엔 세상은 참 가혹할 때가 많지.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고, 퇴근 후 너희들을 픽업하고 씻기고 청소하고 재우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도 꾸역꾸역 다시 노트북을 켜서 어떤 글을 끄적일 때.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왜 내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한 것일까. 지긋지긋하게 들러붙어 있는 꿈이 날 이렇게 가혹한 삶으로 내몰고 있구나.
꺼지지 않고 자작자작 타고 있는 그 불씨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참 많은데,
너에게 단순히 "꿈은 참 멋진거야"라고만 말하기엔 내가 통과하고 있는 현실이란 터널은 참 고달프다.
그래서 이젠 질문을 좀 바꾸려고 해.
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은 너를 행복하게 해 주니?
네가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바라보다 보면, 고달픈 현실이라는 터널을 지나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네 꿈이 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