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건네는 질문 7.
향년 50세.
취재원이었던 변호사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어. 가 봐야 아는 얼굴은 영정사진 속 그 변호사 하나뿐일 텐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가기로 했지. 마지막 길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입구에는 그의 아들이 앉아 부조금을 받고 있었다. 내가 들어설 때쯤 친척으로 보이는 몇몇이 그 아이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고 있었어. 카이스트에 들어갔다고 했지.
'저 아이가 국제학교 다녔다는 그 아들인가.'
그 순간 10개월 전, 그와 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술자리가 떠올랐다. 그날 나눴던 이야기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교육 이야기였어. 마침 나도 너를 국제학교 영어캠프에 보내던 때였고, 그 변호사도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했으니까.
네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다녀와서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했던 그 국제학교.
과자파티가 있어 과자를 가져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데, 그걸 이해하지 못해 빈손으로 갔던 너. 하루 종일 그 안에서 어떤 난감함과 좌절을 겪었을지. 지금 생각하면 내 판단이 경솔했다.
난 그저 영어는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그곳에서 깨닫게 해주고 싶었는데, 영어에 익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 환경은 결국 너에게 너무 버거웠던 거야.
그 변호사는 아이의 국제학교 학비를 감당하느라 고생스럽다는 얘길 했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생활을 거쳐, 대형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인데도 자녀 교육비가 버겁다니. 저런 사람도 교육비를 고민하는 내 삶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 물론 교육의 질과 환경 면에선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걸까.
조직에 시간을 내어주고, 가장 에너지 넘치는 순간들을 일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하루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될 즈음 너를 할머니 집에서 데려온다. 그리곤 너에게 어떤 하루가 있었는지 차분히 들어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하루를 마무리하지.
나는 그 하루치의 삶을 담보로 돈을 벌고 있다.
긴 호흡으로 보면, 젊고 힘 있고 생기가 넘치는 내 젊은 시절 시간과 에너지를 조직에 담보 잡힌 채 갉아먹히고 있는 건 아닐까. 일할 에너지가 다 닳아버린 뒤에야 비로소 이 담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지.
조직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직에 속해 돈을 벌지 않으면 낙오할 것 같은 불안이 자리잡았어. 하지만 조직이 더는 평생을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 그 조직의 관성에 기대 사는 내가, 가끔은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안주하는 개구리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적당히 벌고 그만큼 시간을 확보해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삶을 찾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
향년 50세.
만약 9년 뒤, 저 영정사진 속에 내 사진이 들어간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분명한 건, '돈을 더 벌지 않은 것'을 후회하진 않을 거라는 사실이야.
그 변호사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었을까.
아이의 교육을 위해?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행복한 노년을 위해?
무엇이 되었든, 단순히 돈을 좇고 희생만 쌓아 올린 삶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 안에서 스스로 느끼는 행복과 만족이 큰 몫을 차지했기를. 그리고 아주 선명하게, 자신을 위한 삶이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