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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May 20. 2019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

[김 실장은 왜 그럴까⑦]

"실장님은 왜 흰머리 염색 안하세요?"     
"그냥 귀찮아서. 염색이란 게 한번 하면 계속 해야 하잖아."     



아침 7시 30분. 협회 기자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김 실장을 만났다.      


흰머리 지긋한 김 실장은 소위 말하는 월급쟁이 '끝물'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알짜' 협회에서 평생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 조직에 청춘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부하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시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백팩을 매고 출근한 김 실장은 묻는다.      



"김 기자 밥 먹었어? 지하 카페에 아침이나 먹으러 갈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아 베이글을 씹기 시작했다.      


김 실장의 트레이드마크는 흰머리다.


30대 중반 들어 흰머리가 조금씩 나던 차에 문득 그의 흰머리에 대해 궁금해져 물었다.      


[사진=pixabay]

"조직 생활하면서 염색 안 해도 괜찮아요?"     
"이게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의전 할 땐 문제가 되더라고. 종종 부회장 의전 해야 하는데 부회장 머리는 검고 의전 하는 내 머리는 희니 사람들이 누가 부회장인지 헷갈려해."     



아, 조직생활 하는 사람에게 흰머리는 '개취(개인취향)' 넘어선 의미를 갖는구나.      


막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어린 기자라고 무시당하기 싫어 나이들게 옷을 걸치고 노숙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 때가 있었다.      


"기자가 사원, 대리를 왜 만나. 적어도 부장 급은 만나야 기사가 나오지." 하는 선배 이야기에 '배불뚝이 아재들 만나서 무슨 얘길 하지.' 하고 걱정했던 시절.      


그 땐 빨리 나이 먹고 연차가 쌓였으면 했다.      


[사진=pixabay]


그리고 시간은 스치듯 지나갔다.      


기자 생활 10년차 수습 탈견식(수습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날), 수습기자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정적이 흐르고 '아,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고민하는 순간.      


대리, 사원급 출입처 사람들과 마주 앉아 '아, 차라리 임원하고 얘기하는 게 더 말이 통하겠네.' 생각이 드는 순간.      


술 냄새가 진동하는 11시 지하철, 헝클어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양복쟁이 틈에서 한 치의 어색함 없이 헝클어져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한 순간.      


알게 됐다. 직장생활 10년차에 내 풋풋한 젊음은 이미 지나갔음을.      


그래서일까. 요즘 불현듯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몇 년 뒤엔 흰머리가 파죽지세로 올라올 텐데...   

  

[사진=pixabay]


염색, 할까? 말까?     



출입처 옆 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부장급 기자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그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일단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는 사람이 있고 고루 퍼져 나는 사람이 있어. 듬성듬성 나는 사람은 염색 안하면 추해 보여. 그런데 고루 퍼져서 나잖아? 강경화 장관 같이. 그럼 흰머리가 나도 멋있으니 염색 안 해도 돼."      



"아. 그렇군요."     



"아! 그런데 흰머리가 나더라도 얼굴이 늙어 보이면 추하니 그 때도 염색은 해야하는 거야."     



그런데 머리는 흰데 얼굴은 젊어 보이는 것도 가능한가요 ㅠ


김 실장님 머리에 듬성듬성 나 있는 흰머리도 멋지기만 하던데요.


개취 존중 차원에서 염색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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