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건네는 질문 12.
겨울방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네 방학 때마다 드는 죄책감은 어쩔 수 없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한다는 이유로 너는 유치원 때부터 늘 방학에도 유치원과 학교를 나가야 했고, 그럴 때마다 뒤따르는 불만은 "왜 다른 애들은 다 집에 있는데 나만 학교 가?"였다. 나는 "넌 어차피 학교 가도 놀잖아"라고 기계적으로 대답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죄책감이 남았어.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너와 아침에 요가를 가고, 점심을 같이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함께 읽고…
너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저 꿈 같은 이야기지.
너를 키우고 일을 하면서 '죄책감부터 덜어내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는데 방학 때마다 학교를 가야 하는 너를 보면 그 다짐은 매번 무너진다. 그리고 죄책감은 꼬릿말처럼 따라붙지.
얼마 전 겨울 방학 특강 신청 공지가 왔다. 눈에 들어온 건 뜨개질이었어.
얼마 전에 읽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속 등장인물이 서점에 앉아 하루 종일 뜨개질로 수세미를 뜨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마음과 정신을 비워내듯 수세미를 뜨고 또 뜨고. 수세미를 뜨다가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 다시 뜨고. 그렇게 뜬 수십 개의 수세미를 서점에 기증을 하는 내용이었지.
그 책을 읽으며 1년 반 전의 내가 떠올랐어.
7개월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직전의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거의 탈진 상태였다. 그때 만났던 친구는 내 모습을 두고 '발목에 수갑이 채워져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 같다'고 표현을 했다. 정확했다.
네 동생을 낳고 몸은 급속도로 지쳐 있었고, 연차가 차오르면서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남은 7개월의 육아휴직을 쓰기로 결정을 한거야. 육아를 위해서라기보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큰 결심이 뒤따랐다. 7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직장 생활 전부터 나는 한 번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 늘 무엇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고, 목표를 향해 달려야 했고,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나를 몰아부쳤다. 아무리 채워도 비워지는 물잔을 채우듯 끝없이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이었지.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내게 굉장히 큰 용기였어.
그렇게 육아휴직을 내고 처음 찾아 간 곳이 요가원이었어.
너는 학교에, 네 동생은 유치원에 보내고 나는 매일 요가원에 갔다. 더 이상 남아 있지도 않은 에너지를 쥐어짜는 삶에서, 바닥난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으로 체질을 바꾸려고 한거야. 처음에는 요가를 하며 온갖 잡생각에 시달렸는데 점점 잡생각이 사라지고 내 몸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을 했다. 내 마음과 몸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요가가 끝나면 근처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고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목적 없이 책을 읽었다. 무엇을 위한 책이 아니었으므로 장르도 다양했지.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두서없이 글을 썼고, 그것마저 지루해지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면서 고갈됐던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는 걸 느꼈고, 그제야 나와 내 삶을 들여다볼 힘이 생겼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까지 놓친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살면서 처음 던져본 진지한 질문이었다. 그전에는 그런 질문을 던질 여유도, 그런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몰랐는데, 잠시 멈춰 공란으로 비워버린 7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어.
바쁜 일상 속에서 쉼이란 무엇일까. 그전의 나는 쉬기 위해선 어딘가 배낭을 메고 떠나야 할 것 같았고, 못했던 일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짧은 휴식 시간을 쪼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란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충전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은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번 겨울방학에는 너의 뜨개질 특강을 신청했다. 너는 정말 기대된다고 했지.
넌 가끔 집에 와서 만들기 도안을 인쇄해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며 혼자 집중하는 시간을 좋아하잖아. 평화롭게 오롯이 혼자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
학년이 올라갈수록 돌봄에 나오는 친구들이 거의 없고, 놀 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그 시간을 너만의 방식으로 즐겨보는 건 어떻겠냐, 그런 의미로 집에서 혼자 만들기를 하듯 뜨개질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내 말에 너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특강을 신청하게 된거야.
3학년밖에 안 된 너를 학원에서 선행을 돌리는 시간 보다 스스로 어떻게 쉬는지 깨닫는 시간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야. 앞으로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순간들이 많을 텐데,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너 자신을 충전하는 게 가장 좋은지 그 시간을 통해 네가 스스로 터득했으면 해. 그게 뜨개질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 그 무엇이 됐건. 중요한 건 너만의 쉼을 찾는 연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