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어쩌다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너에게 건네는 질문 11.

by 오수


할 일 없는 주말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저 멍하니 흘려보내고 싶은 그런 주말. 요즘은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아. 몸은 무겁고 기력은 고갈된 느낌. 반면에 에너지가 넘치는 열 살 너는 뭐라도 하자며 엉덩이를 들썩였지. 늘 그렇듯, 우리를 둘러싼 에너지 격차가 선명했던 주말이었다.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옆 동네 강동문화센터로 뮤지컬을 보러 갔다. 제목은 「매직판타지아–도로시 리턴즈. 오즈의 나라 모험을 끝낸 도로시가 친구들의 부름을 받고 다시 그 세계로 떠난다는 이야기였어.


공연을 보며 문득 젊은 날의 내가 떠올랐다. 모험을 동경하던 시절. 주말엔 돈가스집, 칼국숫집 가릴 것 없이 알바를 하며 비행기표 값을 모았고, 그 돈으로 감당 가능한 동남아 어딘가로 떠나는 게 그 해 최대 이벤트였어. 두 달 치 알바비를 떼이고도 "괜찮아, 아직 젊으니까!"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노동 착취를 스스로 '열정페이'로 둔갑시켜 기꺼이 받아들였던 우둔했던 그 시절. 그땐 지치거나 두려운 줄도 모르고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나는 그때의 나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주말이면 침대에 붙어 있으려 하고,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 늙어버렸단 생각에 우울해지지.


공연을 보고 돌아와 어젯밤 너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에서 누가 제일 좋았어?", "어떤 장면이 재밌었어?" 그런 평온한 대화를 나누다 문득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실제 주인공, 주디 갈란드가 떠올랐다. 하필 그때 말이야.

그래서 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 그거 알아? 그 영화의 주인공이 촬영 중에 많이 힘든 일을 겪었대. 살 못 찌게 하려고 영화사에서 하루에 담배도 몇 십개 씩 피우게 했다는거야. 아직 어른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사실은 너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 한 말이 있어.


도로시.png 퍼플렉시티 활용 이미지 BY 느린 걸음


주디 갈란드는 열여섯의 나이에 각성제를 먹으며 촬영을 이어갔다고 해.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들었다가 네 시간 후에 다시 깨워졌고, 햇살보다 강한 조명 아래서 또다시 웃어야 했지. 체중 조절을 위해 매일 80개비의 담배를 강요받았고, 제작자나 감독과 같은 성인 남자들에게 성적 착취를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이런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 어린 너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잔혹 동화 같은 현실을 아직은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


어린 존재가 힘을 가지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를 감싸줄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 세상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그녀의 삶은 보여준다. 세상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방식의 착취들이 이어지고 있어.


TV를 보다가 어린 아이들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나올 때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재능이 어른들의 욕심 속에서 갉아먹히고 있진 않을까 걱정돼서.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어. 언젠가 네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나가게 되면, 너 역시 누군가에게 착취 당할 수도 있을테지. 그때 나는 과연 "그건 착취야, 당장 빠져나와!"라고 확신하고 단정적으로 너에게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착취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꿈을 향한 여정일 수도 있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말이야.


주디 갈란드는 어린 시절 착취를 당했다곤 하지만 어쨌든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될 만큼 헐리우드 스타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게 그녀가 착취를 견디면서도 갈구했던 꿈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나는 도로시의 비극을 오즈의 나라가 아닌 현실에서 찾게 된다. 모험은 언제나 아름답게 포장되지만, 그 모험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존재에게 세상은 잔인할 때가 많으니까.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말과 '착취를 견뎌라'는 말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고 생각해. 언젠가 네가 그 경계 위에 서게 되더라도, 나 역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떤 꿈도 너의 건강과 존엄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거야.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에서 혼자가 되지 않도록, 네가 자랄 때까지는 내가 곁에 있을게. 맑고 투명한 네 세상이 잔혹동화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그리고 언젠가 네가 혼자 서야 할 때가 오면, 네 안의 목소리에 섬세하게 귀를 기울여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 이게 어젯밤, 너와 도로시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가 너에게 끝내 하지 못한 말이야.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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