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때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를 본 적이 있다. 화려한 로코코 패션의 드레스와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매료되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외모, 세련된 옷차림, 궁전의 화려함. 그 모든 것이 당시의 나에게 ‘우아함’이라는 단어로 정의되었다.
시간이 흘러 40대가 된 지금, 우아함의 본질은 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삶은 단순히 호화로움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극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 단지 왕비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앙투아네트는 부와 권력을 가졌음에도 소박한 삶을 꿈꿨다. 그녀가 사랑했던 작은 농장 ‘프티 트리아농’은 복잡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화려한 외모나 사회적 지위만으로는 진정한 우아함을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그녀는 트리아농을 가꾼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듬어갔을지 모른다.
엄마가 되고 난 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 꿈과 열정을 잠시 뒤로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았다. 주변에서 "정말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뿌듯했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스스로를 좋은 엄마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 때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들이 자라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 때쯤, 내 존재감도 함께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한 10년 동안,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던 10대 소녀도, 열정으로 가득 찼던 20대의 나도, 세계여행을 꿈꾸던 활기찬 나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어느 순간, 나만의 ‘프티 트리아농’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만의 작은 공간, 그곳에서 진짜 나를 다시 발견하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베르사유 궁전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가정의 울타리, 아이들에 대한 책임, 사회적 기대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랬듯, 우리도 그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프티 트리아농’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내느라 바빠 잊고 지낼 뿐, 누구나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에도 우아함은 존재한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우아함은 내면의 평온함에서 오는 행복 속에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