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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Aug 25. 2024

마음 훈련 9-우리는 개 없는 삶에 적응 중입니다.

결이 다른 추모 속 같은 크기의 그리움

예비신랑과 나는 올해로 9년 차 커플이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10년을 키웠던 강아지 메리는 두 달 전 6월 14일에 강아지별로 소풍을 갔다.

그러니깐 메리를 키운 지 1년 즈음 됐을 때 우리는 막 풋풋한 연애를 시작했더랬다.


메리는 아주 앙칼지고 예민한 강아지여서 (예비신랑은 자꾸 내 성격을 닮았다고 한다. ^^)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귀청이 떨어져라 짖어댔다.

2살 때 파양이 되어 나에게 왔는데, 이전 집 아저씨가 신문을 말아 때렸던 기억 때문인지 남자 어른을 가장 싫어했다.


그 당시 살던 신길동 오피스텔 근처에는 강아지들의 산책 천국, 영등포 공원이 있었다.

메리는 그곳에서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크게 짖었다.

아마 저 나름의 ‘아조씨 누구새오! 나는 아조씨 시르니까 빨리 가새오!’와 같은 외침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노숙인 아저씨를 향해 왕왕왕! 짖다가 발에 차일 뻔한 적도 있었으니, 그 성질도 참 대단했다.


예비신랑에게 메리를 처음 소개해주던 날, 오히려 내가 더 바짝 긴장을 했다.

과연 메리가 이 남자를 허락해 줄 것인가!

강아지는 본능적으로(?) 선한 사람을 알아본다고 한다.

개장수가 저 멀리서부터 오면 구석에 숨어 덜덜 떤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메리와 예비신랑의 첫 만남, 이건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 사람과 연애를 계속해도 될 것인가의 선택권이 메리에게 있었다.

‘메리야, 네가 이 남자를 허락하면 계속 만날게. 하지만 심성이 못된 사람이면 앙앙 매섭게 짖어서 알려줘!’


늦은 밤, 신길역 근처에서 메리와 예비신랑이 처음 만나기로 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메리와 함께 신길역으로 산책을 나섰다.


신길역 주변을 뱅뱅 돌며 예비신랑이 언제 오려나 기다리던 그때!

예비신랑이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엥, 웬 정장?

예비신랑은 그 당시 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이어서 정장을 입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나와 만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 정장을 입었어야 했던 모양이다.


먼저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 여동생 다음으로 메리를 내 둘째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마치 예비신랑이 내 (강아지) 동생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 정장을 차려입은 것만 같았다. 하하.


이제 나는 메리의 판결을 기다려야 했다.

솔로몬의 판결도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았을 거다.

메리가 짖을까? 아니면 의외로 얌전할까?

3

2

1

땡.


세상에!

메리는 183cm에 95kg인 (지금은 115kg^^) 커다란 이 남성을 보고 짖지 않았다.

그에게 합격 목걸이가 주어진 것이다.

심지어는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에도 얌전히 몸을 맡겼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이 기지배의 예비신랑을 향한 사랑은.

나처럼 메리도 듬직하고 선한 그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꼈던 거다. 짜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

예비신랑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는 작은 강아지가 정말 웃겼다.


메리가 전남친 현예비신랑을 배우자로 허락해 준 덕분에(?) 우리는 순탄한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메리를 키운 10년의 시간 동안, 예비신랑도 9년은 메리의 육견 현장에 뛰어들었던 거다.


물론 매일 함께 먹고 자고 살을 부빈 나보다는 아니었을 테지만 그가 지닌 메리와의 추억 보따리 또한 열기구 풍선만큼이나 클 것이다.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메리를 씻기고 말리는 일은 늘 그의 몫이었다. 물과 바람을 싫어하는 메리를 위해 샤워기를 졸졸 틀어 한참을 씻기고, 드라이기의 가장 약한 바람으로 30분이 넘도록 쓰다듬으며 털을 말리던 건 메리를 향한 그의 애정표현이었다.

메리는 내가 씻기는 날엔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고 망아지처럼 뛰어 도망 다녔지만 그가 씻기는 날엔 세상에 둘도 없는 요조숙녀였다. 참 나.


나는 메리의 장례식장에서 예비신랑의 눈물을 9년 만에 처음 봤다.

‘사람이 왜 이렇게 눈물이 없냐’고 할 만큼 매사에 밝은 ENFP의 그가 메리의 장례날에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내가 볼 새라 급히 훔쳤다.

예비신랑의 눈물을 보고 당황해서 오히려 내 눈이 잠시 수도꼭지를 잠갔을 정도였다.


메리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날에도 울지 않고 밝게 잘 보내주었던 그가,

메리를 화장터로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리움에 찬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도 나처럼 힘들어했다.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늦은 밤 데려다주면서도, 정작 본인도 혼자서는 이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 집의 문을 열고 “안녕, 개~”라고 외치면 헐레벌떡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던 하얀 존재가 없다는 공허함이 그를 슬프게 했을 테다.

몇 번이고 “안녕, 개~”라고 인사할 뻔했다는 그의 가벼운 농담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슬픔이 배어있었다.

메리를 떠나보내던 날 불렀던 나의 자작곡,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다네’를 한동안은 슬퍼서 부르지 못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 노래를 우리가 드디어 함께 다시 불렀다.


우리 부부와 나의 첫 제자, 제자의 남자친구가 아빠의 장례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제자가 키우는 이제 막 6개월이 된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애견카페를 갔다.

그곳엔 많은 강아지들이 있었는데 그중 메리와 비슷한 표정과 체형을 가진 까만 말티푸 아이가 있었다.

성질이 예민한 것도 똑 닮아 있어 한참 눈길이 가던 아이였다.


나처럼 그도 한참을 그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 강아지에게 머무른 동안, 그의 머릿속에도 메리가 한참을 머물다 간 모양이었다.


제자네 강아지 ‘해피’는 예비신랑의 다리 사이를 자꾸만 지나다니며 ‘터널 놀이’를 했다.

오늘 회사에 출근해서 마저 해야 할 일이 있다던 그는 엉덩이가 무거운지 꽤 오랜 시간을 애견카페에 머물렀다. 그는 아무래도 오늘 출근하긴 틀렸다. 차가 막혀 서울까지 2시간 30분이나 걸렸으니깐. 그가 출근하기 싫은 마음에 늦게 출발을 했나 싶어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 출근 못 할 것 같은데 어떡해? 좀 더 일찍 출발할 걸 그랬다.”

“아니야~ 재밌었어~”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제일 재밌었던 거!”

“음.. 해피가 터널 놀이를 재밌어하잖아~“

“맞아, 되게 신나 하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가 나보다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그리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리가 ’건너가기 놀이‘를 좋아했잖아. 그게 생각나서 더 있었어.”


의자에 마주 앉아 무릎을 붙인 채로 있으면 메리는 꼭 우리의 다리를 밟고 건너가는 놀이를 즐겼다.

그는 잠시 그날의 추억에 잠겨 메리를 그의 방식대로 추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리의 죽음에 대해 그가 나만큼은 슬프지 않을 거라고 또는 슬퍼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끄떡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메리는 내 개였으니깐.

그래서 어떤 날들엔 그가 야속했다.

10년 동안 함께한 메리를 보내고 나서 나는 이렇게나 힘든데,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것만 같아서.

항상 밝기만 한 그가 나처럼 충분히 메리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그런데 내 착각이었고 어리석은 서운함이었다.

우리는 같은 무게의 슬픔을 각자 결이 다른 서로의 방식으로 녹여내고 있었던 거다.

그도, 그만의 방식으로 메리를 추모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메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흐느껴 울던 나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말 없이 달래주던 그.

우리 사이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 고요함 속 동질감이 여느 때보다 짙게 묻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는 부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다네’를 부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나온 시간 동안 함께한 강아지를 함께 떠나보내고 함께 그리워하며, 10월에 우리는 새로운 가정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그는 내가 15년 1월 29일에 동생을 천국에 보낼 때도, 24년 4월 11일에 아빠를 천국에 보낼 때도, 6월 14일에 메리를 강아지별에 보낼 때도 그 크나큰 슬픔을 함께 나눠 들어준 사람이다.

변치 않고 듬직하게 내 곁을 지켜준 참 고마운 사람.

메리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는 날 동안 힘든 일, 아픈 일, 슬픈 일들이 왜 없겠느냐만은 우리는 함께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알았으니 더욱 돈독해진 오늘로 인해 내일 또한 잘 지낼 것이다.

살다가 힘이 드는 날이 올 때, 우리는 또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한 바탕 웃어넘길 거다.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다네.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다네.’




<메리의 장례식장에 가던 날, 빛이 내리쬐는 강아지 모양의 구름이 꼭 천국에서 뛰어노는 메리 같았다.>

(물론 ‘강아지 모양의 구름이 어디 있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착한 사람 눈에는 보일지어다!)


<메리를 보내던 날, 관 뚜껑에 쓴 편지. 네 줄을 혼자 다 쓰냐고 투덜거리더니, 그는 마지막 한 줄에 그의 모든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았다.>


<안녕하새오, 메리애오! 저는 지금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이써오. 언니랑 오빠가 천국으로 돌아오는 날 마중을 나갈 거애오.>


<22년 내 생일, 파주에 있는 한 애견카페에서 함께 신나게 뛰어놀았던 날. 그는 메리가 보고 싶어 우는 내 머리통을 오늘도 이렇게 쓰다듬었다.>


<아이폰이 화면에 띄워준 사진 중 하나, 제주 바다에서. 메리는 어느 날은 바다에 뛰어들었고, 어느 날은 싫다고 뛰쳐나왔었다. 천국에서의 물놀이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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