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 내 첫 차 ‘남다람’!
“나 사고 났어.”
“어?”
“6중 추돌 사곤데 내가 세 번째야.”
“괜찮아? 많이 안 다쳤어?”
“응. 병원은 가봐야 하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어. 근데 차가 부서졌어.”
”많이 안 다쳤으면 됐어, 다행이네. “
“보험접수 하고 연락할게!”
토요일 아침, 예비신랑이 고속도로에서 6중 추돌 사고가 났는데 그 중간, 세 번째에 끼었다고 했다.
맨 앞 차가 이유 모를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줄줄이 급정거를 하느라 벌어진 사고였다.
다행히 예비신랑은 시속 80킬로로 달리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바로 앞 차 K5의 급정거에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을 땐,
추~웅분한 안전거리 까지는 확보되지 못했는지 앞 차를 쿵 들이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뒤에서 싼타페가 우리 차를 쿵.
싼타페 뒤의 베뉴가 쿵. 마지막 렉서스가 쿵.
6중 추돌인 와중에도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다.
새로운 글거리가 없나 어슬렁거리던 하이에나는,
먹잇감을 포착하고 눈을 반짝였다.
차가 좀 부서졌으면 고쳐 타면 될 일이지 생각하고, 예비신랑이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고 안심하던 찰나에 다시 전화가 왔다.
“큰 일 났어. 폐차해야 된대..”
“.. 폐차????”
“엔진룸을 먹어서.. 그리고 자차 보험이 안 들어져 있어서.. 수리비가 폐차 비용보다 많이 나올 거래.. “
“폐차하면 얼마 받을 수 있는데..?”
“.. 95만 원..”
이런, 하이에나도 이건 예상 못했다.
그저 가벼운 에피소드로 끝날 줄 알았던 사고가 폐차라는 결말이라니!
3년 전 600만 원에 주고 산 09년식 소울은 95만 원이 되어 차갑게 돌아왔다.
심지어 이 차의 주인은 예비신랑이 아니라 나다, 바로 나다!!!
차 모양과 색이 다람쥐를 닮아 ‘남다람’이라는 귀여운 이름도 손수 지어준 애틋한 나의 첫 차.
예비신랑의 성을 따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다람이와의 첫 만남은 메리를 데려왔을 때처럼 불쑥, 그런 만남이었다.
몇 년 전,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꽂혀 5살 남자아이처럼 온갖 종류의 자동차 이름을 다 외웠더랬다.
어떤 차를 살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중에 교회에서 중고차 판매를 하시는 권사님이 보내준 자동차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소울의 귀여운 뒷모습(나는 귀여운 궁둥이라고 불렀다.)과 가장 좋아하는 색인 ‘누리끼리’에 반해 덜컥 중고차를 사버린 거다.
면허는 있었지만 운전은 전혀 할 줄도 모르면서..!
교회 주차장에서 열심히 주차 연습도 해보고 예비신랑에게 연수도 받았지만
혼자 운전을 해본 건 딱 한 번이었다. 그것도 15분 정도.
매번 예비신랑이 옆에 타 있다가 혼자서 운전하려니 너무 겁이 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람이를 혼자 몰았던 짧은 15분이 뿌듯한 성취감으로 남아있긴 해도,
결국 다람이는 거의 예비신랑의 차가 되고야 말았다.
차 없이 뚜벅이 연애를 하던 우리에게 차가 생긴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메리를 태우고 애견동반이 가능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어서 행복했다.
메리도 다람이를 타고 어디론가 놀러 가는 게 신이 났었는지,
그저 집 앞 산책을 나가는 줄로만 알았다가 우리를 태우러 온 다람이를 보면 그렇게 방방 뛰었다.
메리가 아픈 후로는 흥분하는 일들이 금지되어 함께 차를 타고 놀러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아무튼 다람이는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준 고마운 차였다.
3만에서 5만 킬로 정도 더 타고 다시 중고로 팔면 못해도 20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는 찻값을 똥값으로 만들다 못해 폐차를 시키고야 만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차를 구입해야 하니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
왜 ‘자차보험’을 들지 않았을까..!
자차보험을 들었더라면 수리해서 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차보험이 있는 경우는 폐차를 시켜야 하는 같은 결괏값이어도 중고시세로 쳐준다고 하니 100만 원쯤은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글에서 ‘껄껄맨’과 작별을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냐.
일단 예비신랑이 다치지 않았고 다른 인명 피해도 없었으니 감사했다.
예비신랑이 보험사와 잘 마무리하고 서울로 잘 올라오는지 확인하려 전화를 걸었다.
“서울로 오고 있어?”
“응.. 나는 자차가 없어서 대차도 안된대.. 내 뒤 싼타페는 신형 싼타페 렌트해 줬는데 나는 버스 타고 알아서 가래..”
예비신랑은 본인만 덩그러니 남아 폐차를 앞둔 차에서 짐을 주섬주섬 꺼내 버스를 타러 갔다고 했다.
시무룩한 그의 목소리에서 온갖 서러움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황당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똥 마려워서 휴게소를 가려다가 갑자기 네비 시간이 줄길래 집에 가서 싸려고 참고 가다가 사고 났어.”
“.. 많이 안 다쳤으면 된 거지..!”
“아 그냥 똥을 쌀 걸!”
예비신랑의 머릿속엔 온통 똥똥똥, 똥뿐이었다.
‘똥을 싸러 휴게소에 갔으면 사고를 피했을 텐데.’
내가 떠나보낸 껄껄맨이 예비신랑에게로 옮겨간 모양이다.
예비신랑은 내가 함께 타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내 차를 폐차시켰다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며 똥만 탓했다.
그날 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잠을 잔 예비신랑이 안쓰러워 치킨을 먹이기로 했다.
나는 농담으로 “당신은 나에게 빚을 400만 원 졌으니, 10년 후에 4000만 원으로 갚으시오! “라고 말했다.
예비신랑은 정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우웅.. 미안해…”라고 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치킨 한 마리를 허겁지겁 다 먹고도 계속해서 머릿속엔 ’아, 똥 싸러 휴게소 갔으면 사고 안 났을 텐데.‘ 만 맴돈단다.
왜 하나님은 갑자기 네비 시간이 줄어들게 하셨냐고, 그것 때문에 휴게소를 안 간 거라는 푸념을 하길래,
아휴 그러게! 하나님이 똥을 그냥 바지에 싸게 하셨으면 시트값만 들었을 텐데!!
라고 맞장구를 쳐줬더니 영감처럼 허허 웃는다.
나의 첫 차 다람이는 대견하고도 늠름하게 자신의 아빠(?)를 잘 지켜주고 떠났다.
첫 차를 샀을 때의 설레는 시간을 지나 차를 폐차시킬 때가 오면 다들 헛헛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분명 자동차는 생명이 없는데도 긴 시간을 발이 되어 달려준 든든한 존재에게 드는 애정.
나 역시 갑작스레 귀여운 붕붕이를 떠나보내게 되어 놀랐던 마음이 점차 아쉽고 헛헛해진다.
더 튼튼하고 좋은 차를 예비해 두셨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다람이를 잘 보내줘야지.
마음 훈련이 되기 전이었다면 예비신랑을 쥐 잡듯 잡았겠지만 (^^)
올해 여러 번의 장례를 경험하면서 내 마음이 사뭇 단단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고가 났던 날의 밤, 치킨을 먹으러 터덜터덜 걸어오는 예비신랑에게 달려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저 6중 추돌 사고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다.
허락되지 않을 수 있던 시간이 허락되었으므로, 감사하다.
돈이 사람보다 귀했던 못난 나의 마음이 많이 고쳐졌으니 감사하다.
“어휴, 결혼식 두 달 앞두고 자기 떠났으면 나 베스트셀러 작가 될 뻔했어.”라는 내 농담에
“뭐야! 그래서 아쉬워?”라고 나를 흘겨보는 그를 쓰다듬으며
“아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안돼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라고 말했다.
얼마 전 이런 기사들을 봤었다.
딸의 결혼 일주일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12월 아이 출산을 앞두고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PD.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했다.
어느 누구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불행’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로 뛰어오를 지 모르는 개구리처럼, 한바탕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쓰나미 같은 그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그러나 불행이 살짝 스쳐가 오히려 일상의 기적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살아간다는 것이 문득 겁이 나서 눈물이 덜컥 흐를 때,
나는 아직 평범한 하루라는 기적 속에 있음을 몇 번이고 떠올린다.
혹여나 기적과도 같은 매일의 일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춤을 추며 천국에 입성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되뇌인다.
그러니 괜찮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주어진 하루를 기쁨으로 잘 살아낼 것이다.
지난주에 제자를 보러 평택에 갔을 때 제자가 남겨준 다람이 사진.
예비신랑은 이 사진을 보고 다람이의 ‘영정사진’이라고 해서 등짝을 찰싹 한 대 맞았다.
너무나도 귀여웠던 남다람의 궁둥이, 이제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