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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Sep 06. 2024

마음 훈련 12-악플 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구에게나 다정한 응원이 필요해요.

브런치에 썼던 글들 중 하나가 다음 메인에 걸리며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3만’! 내 생애 3만 명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우리 가족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전국방송이었으니 그 쯤 시청자가 됐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3만이라는 숫자는 평범한 인간 12893836275인 나에게는 매우 큰 숫자다.


아무래도 조회수가 높아지는 만큼 상처받을 수 있는 댓글이 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떠 브런치 알림을 확인하고 다시 자려던 순간!

어느 답글로 인해 내 달콤한 아침잠이 달음박질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의 주특기이자 장점은 ‘예쁜 말 고르기’ 아니겠나. 그 또는 그녀의 하루에 고단한 일이 있었겠거니 하고 평안을 바라는 답답글을 남겼다.


악플, 그것은 타인의 비난이 두려운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할 당시, 인터넷 카페에 나를 겨냥한 대단한 악플이 하나 올라왔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무쪼록 나의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겨우겨우 극단에 들어갔으면서도 그 하나의 글로 오랫동안 꿈꿔온 길에서 돌아섰다.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는 99개의 글 보다, 비판하는 1개의 글로 인해서 켜켜이 쌓아온 소녀의 꿈은 꼭 인어공주 이야기의 결말과 같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독기를 품고 더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무대를 보여줬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나에게 실망했던 그분을 다시 초대해서 정말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더라면, 사라진 물거품은 찬란히 빛나는 무지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악플로 인해 무대가 자꾸만 무서워졌다. 나를 보는 관객들의 시선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찾았다.

‘오늘도 내 연기가 형편없으면 어쩌지,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실망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온통 내 머리를 뒤덮는 바람에 무대 위에 선 나는 ‘인영 씨’가 아니라 나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물 병 안에 든 벼룩처럼 가두고 더 높이 뛰어오르지 못한 채로 연극배우의 꿈을 접었다.


그 후, 먹고살 길을 찾다가 ‘영어영문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영어학원 강사가 되었다.

‘제 수업은 한 편의 공연과도 같습니다. 저는 무대에 올라서는 배우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합니다.‘라는 멋진 소개말을 완성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끝내 이루지 못한 배우라는 꿈에 대한 아쉬움이 슬쩍 묻어있었다.


악플에 졌던 경험이 단지 그뿐이던가.

키우던 강아지 메리를 콘텐츠로 유투버에 도전했던 때였다. 메리와 함께하는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 편집을 하는데 도파민이 팡팡! 터졌다.

어느 날은 메리가 양말을 물고 도망을 갔는데 양말을 뺏으려는 내게 으르렁 거리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구구집 자식이길래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지.’

아마도 누구 집 자식을 오타내서 구구집 자식이 된 것 같았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메리가 으르렁 거릴 때마다 나와 예비신랑은 메리를 ‘구구집 자식’으로 부르며 깔깔거렸다.

아무튼 구구집 자식 이슈로 인해 스멀스멀 동영상 찍기를 미루다가 유투버의 꿈도 아스라이 사라졌다.

(사실 그 댓글때문이라기 보단 나의 나태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유독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의 성향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며칠 전 밤에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펑펑 울었다.

동생이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동생을 간호하느라 병원에 매여있었다.

그렇다면 아빠가 나를 잘 돌봤어야 했는데, 아빠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둘째 딸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을 했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러 온 천지를 돌아다니는 통에 결국 나는 친척도 아닌 동네 친구네 집에 맡겨졌다.


그때 당시 내 나이는 고작 열 살이었다.

이름이 ‘인정’이던 동네 친구는 이름처럼 인정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 며칠은 나와 한 집에서 지낸다는 것에 신나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 너네 집 할 것 없이 드나들며 같이 놀았으니 함께 지낸다는 건 더욱 신날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집에서 지내는 날들이 점점 길어지자, 친구는 돌연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외동이었던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의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는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은근하게 상처를 주던 말들이 점점 뾰족해지고 선명해져 어린 내 마음을 할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나를 가장 미워하는 친구로 바뀌는 순간은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큰 상처였다.

학교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나를 골려 놓고는 웃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쩜 그렇게 영악한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내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가지고서.


눈칫밥을 먹고살았던 내 어린 시절의 아픔은 곧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되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미움을 받는 게 무서웠다. 누구의 미움도 사면 안 됐다. 항상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 번은 친한 친구가 “너는 ’ 미안해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해.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구걸하듯이 미안하다고 해. “

나는 ‘구걸’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충격을 받았다.

구걸을 하는 것처럼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고?

내 입에 쩍 달라붙어버린 ’ 미안해 ‘는 여전히 쉽게 툭- 나오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난 이후로는,

정말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인가를 생각하고 ‘미안해’를 말하곤 한다.


이제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나의 세계에서는 가장 위대한 ’ 미움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를 각오해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서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강점이 되었다.

미움받는 게 두려워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그 버릇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쉽게 알아차리고 깊게 배려하는 센스 있는 성품이 되었다.

상처 주는 말을 하면 미움을 받을까 봐 말을 고르고 고르던 습관은,

다정하고 따듯하게 건넬 수 있는 예쁜 말들을 만들어내는 마법 지팡이가 되었다.

그러니 서러웠던 눈칫밥은 고난이 아닌 셈이다.

내게 ‘따스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고마운 선물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갓 새내기가 된 나에게 대학동기 몇 명이 물어왔다. “ㅇㅇ신문의 그 기사 혹시 너야?”

나는 그들의 시선이 혹시라도 동정으로 바뀔까봐 염려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또 다른 날, 후속 기사로 내 인터뷰가 온라인 신문에 떴을 때는 악플이 달렸을까봐 눈을 질끈 감았다.

악플이 달렸을까 무서워 기사들을 클릭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읽었던 댓글은 모두 다 애정어린 응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 대견하다며 내게 따스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있지도 않은-있더라도 아주 소수의-악플 때문에 멈춰서거나 넘어지지 않으려 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예수님도 안티가 칠천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10명 중 2명은 나를 싫어하고, 7명은 무관심하고, 1명만이 나를 좋아한다.‘는 글귀가 있다.

누구를 만나도 10명 중 2명은 나를 싫어하게 되어있으니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맞다. 나머지 9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를 좋아해 주는 그 한 명을 나도 소중히 여기면 될 일이다.

어린 나를 응원해주었던,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막연한 비난 때문에 멈추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을 것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나의 글을 보고 피식 웃고선 잔잔한 위로를 얻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구독자 중의 한 분이 어느 밤에 마음훈련 11번부터 1번까지 하나하나 라이킷을 눌러주셨다.

나는 그때 깨어있어서 브런치 알림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글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시며 소중한 하트를 꾹 눌러주신 것 같았다.

내게는 그것이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글은 남는다.

내가 휴지통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고르고 골라 쓴 글들을 읽고 누군가 공감을, 위로를, 삶의 희망을 얻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글 쓰는 일이 참 좋다.

앞으로도 나다운 글을 계속 써보려 한다.

아픈 상처를 힘겹게 꺼내지만 그 속에는 유쾌함이 깃든,

내 삶에 찾아왔던 고난들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난으로 포장된 선물’로 소개하는 나다운 글.


그림책 ‘소나기’에 등장하는 멋진 글귀처럼,

“인생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거야.“




운동 가는 길에 발견한 경고 문구를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담배 피우면 신고합니다.’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 ㅇㅇ놈들아.’

‘여기서 담배 피우면 벌금형.’

보다도 더 효과적인 귀여운 경고,


“여기서 담배피면 바보.”


이처럼 우리네 삶도 피식- 웃음이 피어나는 위트가 가득한 매일이었으면 한다.

다른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예쁜 말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한 마디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과도 같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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