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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Sep 11. 2024

마음 훈련 13-아빠가 복권 5억에 당첨됐다고 합니다.

복권 에피소드 최강자의 등장

아빠가 어느 날 밤, 내가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시간인 걸 아는데도 계속 전화를 했다.

안 받으면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쉬는 시간에 복도로 나가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말은 황당했다.

“학원 때려치우고 집에 빨리 내려와라!!”

“뭔 소리야?"

“학원 때려치우고 순천에 내려오라고오! 캭, 퉤. 복권 당첨됐으니까!”

“복권에 당첨이 됐다고?”

“5억에 당첨 됐어! 캭, 퉤.”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아빠는 계속해서 가래침을 내뱉으며 얘기를 했다.

친구분과 밤에 낚시를 하다 복권을 긁었는데 5억에 당첨이 됐다고 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진짜야?” 라고 재차 물으니

갑자기 난생처음 “씨x년아!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하는 욕이 날아왔다.

아빠는 엄마에겐 늘 험한 욕을 했지만 나에겐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아빠가 대뜸 나에게 욕을 한 것이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서 “지금 뭐라고 했어?! 사과해!! 왜 딸한테 욕을 해?!! 그 돈 나는 필요 없으니까 끊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 돈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다고 한들, 도박중독인 아빠는 매번 그랬듯이 내게 전화해서 그 돈을 달라고 독촉하며 나를 괴롭힐 것이었다.

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리니 아빠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미안해.. 아빠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어.. 자꾸 진짜냐고 의심 하니깐..”


믿을 수가 없어서 친구분을 바꿔달라고 하니, 친구분도 웃으며 당첨이 됐다고 했다.

그날 밤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빠가 이 돈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괴로웠다. 어쩌면 이 돈으로 인해서 아빠가 정말 개과천선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걱정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다음 날 아빠는 친구분의 차를 타고 새벽부터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아빠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동행복권 본사를 찾아갔다. 입구에서 복권이 당첨이 되어 왔다고 말하니 문을 열어주었다. 테이블에 잠시 앉아 기다렸는데 곧 직원분이 나와 복권 실물을 보여달라고 했다. 아빠가 닭이 알 품듯 소중히 품에 넣어둔 복권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그런데 복권을 보는 직원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버님, 이 복권은 오천 원짜리 당첨인데요…”

위풍당당하게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기세로 앉아있던 아빠는 본인의 전투가 마침내 참패로 끝났음을 알게 된  장수처럼 당혹스러워했고, 절망했다.


복권을 돌려받아 확인해 보니 복권은 누가 봐도 ‘오천 원’ 당첨이었다.

아빠가 금액 부분을 먼저 긁고 그 다음 긁었어야 할 그림 부분은 깜빡한 채로 오억 원이라고 쓰인 글씨만 보고 착각한 것이었다. 하필 긁기 전 그림이 꿀벌 모양으로 일치해있었다. (사진이 글 마지막에 있다.)


순간 안도와 아쉬움이 한데 뭉쳐왔다가 흩어져 내렸다. 아빠는 다시 아빠의 일상으로, 나도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겠구나 싶어 여러 고민거리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안도하는 마음, 그러나 더 편해질 삶에 대해 스리슬쩍 기대했던 것들을 이룰 수 없다는 것에서 아쉬운 마음도 뭉게 피어났다.

늘 일확천금을 꿈꾸다 드디어 이제는 원하는 대로 살아보겠구나 신나 하던 아빠가 삶의 마지막 그림을 마음껏 그려볼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아빠는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평생 낚시를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 그림은 조각조각이 나버렸다.


동행복권 본사를 나오자마자 아빠는 곤란하고도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100만 원만 좀 어떻게 안되겠냐..?”


살면서 아빠에게 100만 원의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아빠는 내게 100만 원을 참 쉽게도 달라고 했다.

아니, 아빠도 내게 100만 원을 보내준 적은 있었다. 열심히 택시 운전을 할 때 100만 원을 보내주고는 며칠 뒤 그 돈을 다시 보내라고 난리를 쳤다. 그 돈은 고스란히 도박장에서 내 돈도, 아빠 돈도 아니게 되었다.


“내일까지 못 갚으면 아빠 맞아 죽는다 진짜..”

복권당첨이 된 줄 알고 그간 빚을 졌던 사람들에게 내일까지 빚 갚겠노라고 떵떵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왔단다.

힘든 서울살이를 혼자 아등바등 버티고 버티는 딸에게 아빠는 자신의 빚을 갚아달라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의 도움을 바랄 수 없는 황무지 같은 땅에서 나는 스무 살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잡초처럼 버티고 버텼다. 경제적으로 무너지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부모도, 자매도 없는 혈혈단신. 그게 나였다.


‘그래도 아빠니깐 눈 질끈 감고 도와주자.’라는 생각과 ‘이런 게 무슨 아빠야, 도와주지 마.’라는 생각이 치열하게 머릿속 전투를 시작했다. 아빠는 정말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연신 부탁을 했다. 그 허망한 눈초리를 보니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답답했다. 삼만 몇 천 원 정도가 전재산인 아빠에게 지갑 속에 있던 오만 원짜리를 꺼내 건넸다. "우선 이걸로 밥이라도 사 드세요. 기차표는 내가 끊어줄게."

순천으로 돌아가는 ktx값이 비싸다며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제일 싼 무궁화호를 끊어달라고 했다. 아빠 본인도 딸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민망하고도 미안한 일이라는 걸 잘 아는 눈빛이었다.


결국은 이번에도 아빠를 도와주기를 선택하게 되었다.아빠는 내게 일을 해서 100만 원을 꼭 갚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받지 못할 돈으로 생각하고 아빠를 도와주기로 했다. 아빠와 연을 끊고 살기를 택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내게 남은 선택지는 아빠를 도와주는 것밖에 없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연을 끊는 것보다 끊지 않는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왜 아빠와 연을 끊고 살 수 없었을까? 아빠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한 번이라도 ‘아빠답게’ 살기를 바랐던 마음과 기대감이 끝내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빠가 '아빠'다웠던 날들도 간혹 있었다. 다 합쳐도 몇 년이 안될 아빠와의 좋은 추억의 날들이 몇십 년 동안 나를 괴롭게 한 아빠를 용서하고 또 용서하게 했다.


아빠는 늘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천국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에 유품 정리를 하러 아빠가 살던 집에 갔을 때도 어마어마한 양의 복권들이 발견됐었다. 몇 십만 원어치의 복권들이 꽝인 채로 나뒹굴고 있었을 정도였다. 내가 그간 보내준 돈이 다 이런 데에 쓰였구나, 허탈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말로 미워했던 아빠였는데도 막상 아빠의 죽음을 마주하니 그간 미안한 것들과 냉정하게 굴었던 것들만 잔뜩 떠올랐다. 미련하게 아빠의 빚을 갚아줬던 일들은 여전히 잘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나도 할만큼 했다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아무튼 동행복권 본사에 간 일 이후로 다시는, 다시는 복권을 사기 싫었다. 한동안은 복권집만 봐도 가슴속에서 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이런데도 적용이 되는 걸까? 가슴속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는지 복권을 봐도 마음이 괜찮아져서 재미 삼아 복권을 한 번 두 번 사게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마음 훈련 글 2개가 연달아 다음 메인에 걸리면서 또다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처음엔 조회수가 높아지면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간혹 내 의도와는 다르게 글이 읽히는 경우도 있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어느 답글이 내 아침잠을 달아나게 했다. 마음이 잠시 불편해졌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또는 그녀가 언젠간 미소 지으며 볼 수 있는 더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같은 글을 보고 누군가는 응원을, 누군가는 비판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각자가 지닌 마음밭에 따라 읽는 글이 다르게 심기는 것 같아서 크게 괘념치 않으려 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 그저 앞으로도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도 상대의 마음을 생각지 않고 마구잡이로 흩뿌린 칼날은 하루종일 은근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지난번 마음 훈련 12번 글에서처럼, 나는 이제야 막 악플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었으니까.  아무쪼록 이 스트레스를 오래 담아두고 싶지 않아서 나름의 재미난 방법으로 툭 털어내고 싶었다.


‘스트레스에 값어치를 매기자, 그리고 복권을 사자.’

당첨되면 스트레스의 원인에게 감사(?)할 수 있으니 그까짓 거! 기분 좋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첨이 안되면.. 어라? 안되면 어쩌지? 더 짜증 나는 거 아냐?


하지만 이미 내 몸은 횡단보도를 건너 GS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있었다. 보통은 5000원 정도만 재미 삼아 사보는데 이번엔 무려 만 원을 쓰기로 했다. 짠순이 짠짠짠이 무려 만 원을 복권에 쓰다니..!

로또 자동 오천 원에 스피또 5장 오천 원, 오늘 내가 받은 스트레스 값이었다.

스피또 복권은 당장이라도 긁어보고 싶어 간식을 눈앞에 두고 궁둥이를 들썩이는 메리처럼 손이 근질거렸지만 마침 저녁 선약이 있어 강제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모두가 다를 테지만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딱히 없었다.

코노 가기? 내향인은 부끄러워서 엄두가 안 나요.

산책하기? 강아지가 떠나고 혼자는 잘 안되더라고요.

영화 보기? 매 번 뭐 볼까 고민만 하다가 티비를 꺼요.

운동하기? 그쵸, 땀을 쫙 빼면 좋긴 하죠. 도전!

(하지만 체력고갈 이슈로 꾸준하지 못했다.)


닌텐도 동물의 숲 같은 힐링 게임을 하거나, 오버워치처럼 상대를 죽이는 킬링 게임을 하는 것도 내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였다. 동물의 숲은 친한 언니가 빚을 다 갚아줘 버리는 바람에 게임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서 그만두게 되었고, 오버워치 게임은 상대 캐릭터를 죽이는 것보다 내 캐릭터가 더 많이 죽어서 성질이 나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방법으로 복권을 사보게 된 것이다. 꽤 나쁘지 않았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아빠의 삶에서 유일한 동아줄은 복권이었으리라, 그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맞다.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참 좋겠다. 소소하게 말고 기왕이면 크게!

매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굴러가던 삶이 한순간에 '돈 걱정 없는 편한 삶'이 된다는 것 축복일 것이다.

1등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얼마 전 폐차된 자동차 다람이를 잊고 옵션이 빵빵한 새 차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면 얼~~ 마나 좋을까. 늘 꿈꾸던 학원을 차려서 원장이 된다면 얼~~~ 마나 좋을까.

돈으로 걱정하던 것들의 해결책을 살 수 있다.

그러니 1등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뜨는 베짱이로서 '네 손이 수고한 만큼 거두리라'는 성경말씀에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정말 그렇다. 요행을 바라는 삶은 요지경으로 끝이 난다. 수고를 통해 거둔 결실은 30배, 60배, 100배가 된다.  매 달 돌아오는 월급날은 지난 한 달 동안 성실하게 나의 노동을 지불한 대가이다. 매일 출근길을 나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기적이 지켜진 것에 대한 대가이다.


나는 아빠가 이 노동의 대가를 누렸으면 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닌 하루에 감사하며 그저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냈으면 했다. 아빠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나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부모가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비칠 나는, 성실하게 매일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부모일 것이다.


아빠를 보며 마음속에 단단히 닻을 내린 생각은 아빠처럼 복권에 의존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도 복권을 사던 돈으로 더 좋은 것을 챙겨 먹고, 더 성실하게 매일의 노동을 감내했다면 마음도 몸도 무너져 내리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미 내게 주어졌다.

아침 햇살에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것, 세상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것, 보드레한 인형으로 손을 뻗을 수 있는 것, 섬유향수 향기에 슬쩍 미소가 나는 것, 몸을 일으켜 걷고 뛸 수 있는 것,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는 것, 내 생각을 타닥타닥 글로 쓸 수 있는 것, 학원으로 출근해서 아이들과 조잘거리며 떠들다가 한바탕 하하 웃는 것, 늦은 밤 퇴근길을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인터넷 화면 너머로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도 곁에 있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이 돈은 아니다.

요지경 같은 요행 없이도 요술 같은 행복이 늘 우리 곁에 있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싣고 오는 매 순간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만 복권을 사 본다.


아참, 그래서 만 원어치 복권은 어떻게 됐냐고?

짜잔! 6천 원이나 다시 거두었다.

4천 원에 스트레스 날려 보내기 성공이다. 하하!

물론 로또는 꽝이지만.


이 복권이 바로 한바탕 소동의 주인공 되시겠다.

지금 보니 이미 오천 원이 당첨되어 있었다.

오천 원이 당첨된 복권에 중복으로 오억 원이 당첨될 리가 없는데 황당하다. 복권마스터인 아빠조차도 본인이 덜 긁었다는 생각을 깜빡하게 한 감쪽같은 꿀벌 그림.


잠깐만, 이 모든 것이 혹시 나에게서 100만 원을 빌려가기 위한 아빠의 치밀한 계획이었던 걸까?

마치 반전 영화 식스센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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