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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의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영국도시문화기행 - 4월 리즈

by Elena

‘아 못 고르겠다. 뭐가 좋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동안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펼칠 기회가 없던 탓인 건지 혹은 늘어나는 선택의 폭 때문인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주변 지인들은 망설임이 담긴 질문을 심심치 않게 던진다. 이는 소수의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닌 최근 나타난 사회적 경향이다. 우리는 선택의 어려움에 빠진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활보하는 ‘요즘 사람’이지만, 결정을 곧잘 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처음 봤을 때 ‘아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오랜 고민없이 선택한다. 영국 리즈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도시인지 전혀 몰랐음에도 ‘리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포스터를 봤을 때, ‘아 여긴 가야 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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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도시를 꿈꾸는 도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리즈는 관광객, 유학생들 심지어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가 없는 도시이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주변에 리즈를 다녀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축제도, 인물도, 건축물도 없는 이 심심한 도시의 매력을 찾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도시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는 않는 ‘인터내셔널’이라는 타이틀을 건 축제를 보았을 때, 오히려 더 흥미가 생겼다.
올해로 1회를 맞는 ‘리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는 음악, 영상, 기술, 패션 4가지 분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9일간 즐길 수 있다. 특정 장소가 아닌 도시 내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각 분야의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날마다 1-2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패션 블로거로 유명한 수지 버블부터 포스트 펑크 락 밴드 Wire까지, 화려하고 다양한 라인업은 많은 이가 축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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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축제

흔히 ‘페스티벌’이라 하면 축제를 알리는 플랜 카드 아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와 요란스럽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연상되지만, 리즈 페스티벌은 도시 어디에서도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낌새도 느낄 수 없었다. 아마도 프로그램들이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라 으레 짐작은 하면서도,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도시치고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에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축제가 열리는 첫날, 리즈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리즈 패션쇼’가 열린다고 하여, 기차에서 내려 지도를 따라 그곳을 향해 걸었다. 거리 한복판에 설치된 하얀 슬레이트 조형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어 헤매지 않고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약 30명 정도의 인원이 수용되는 좁고 긴 형태로 구성된 조형물은 ‘패션쇼’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연히 거리를 지나던 사람도 누구나 들어와서 쇼를 감상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쇼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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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타임테이블은 생각보다 빽빽했다. 실제 영국 패션 브랜드 컬렉션 의상부터 대학 패션학과 학생들의 작품까지, 눈앞에서 지나가는 모델의 옷핏과 질감, 색감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패션쇼는 매장 행거에 걸린 옷을 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쉬지 않고 나오는 모델들을 바라보던 이들은 10대 아이들부터 60대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이들 중에 일부러 쇼를 보러 찾아온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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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한 인상

쇼가 끝나고 ‘기술’분야 프로그램인 ‘Merrion VR’이 열리는 센터로 향했다. 흔한 쇼핑센터였는데, 중앙 홀에 붙여진 축제 마크 덕분에 다행히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30분 대기 끝에 3가지 종류의 게임 중 오락실에서 할 수 있는 비행기 맞추기 게임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단순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정말 실감 났던 3D VR 체험은 어릴 때 하던 플레이스테이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체험에 ‘매우 만족’스럽게 설문조사를 한 후 마지막 행사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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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건물 찾기

다음 장소를 찾는 것은 꽤 긴 여정이었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는 엉뚱한 건물이 나타났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물어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행사 장소에는 들어가기 민망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 고요했다. 오픈은 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스태프는 문 옆에 앉아 정적이 흐르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그의 말마따나 마치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는 투박한 내부는 ‘Youth’와 ‘Subculture’와 같이 그들이 내세운 단어와 잘 어울렸다.
약 50명 정도의 사진작가가 자발적으로 만든 커뮤니티 ‘Youth Club’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Youth’에 관련한 작품 활동을 한다.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설치된 빔프로젝터, 그들이 찍은 몇십장의 사진, 벽에 붙여진 설문지 그리고 공간이 휑해 보여 두었다는 탁구대가 전부였다. 장소를 찾기 위해 들인 공에 비해 볼 것 없는 전시에 허무감이 밀려왔지만, 왠지 이러한 허무함이야말로 그들만이 줄 수 있는 감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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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1회를 맞이한 신생 축제에서 오랜 연륜과 명성이 높은 축제에서 느낄 수 있는 명확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안다. 신생 축제에서는 특유의 투박함에서 오는 신선함이 있다. 틀에 박히지 않고, 꾸밈없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축제. 다른 지역 축제와 비교하던 마음을 내려놓자 ‘그들이 바라는 문화와 예술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몇 년 후 그들의 바람처럼 리즈의 축제가 지역을 넘어 ‘국제적인’ 축제가 되어 있을지 궁금증과 함께.


*본 글은 2017년도에 도시문화컨텐츠 매거진 '어반폴리'에서 매월 1회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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