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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의 닥터후 익스피리언스

영국도시문화기행 - 3월 카디프

by Elena

전날 밤 방영된 오락 프로그램 혹은 드라마 속 하이라이트는 하루도 빠짐없이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이다. 그럴 때마다 TV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했을까 싶다. TV 드라마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짐작하건대, 당시 TV는 라디오의 등장을 뛰어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대중들이 TV 드라마를 막 즐기기 시작했을 무렵, 1963년 영국에서는 타임머신을 주제로 한 어린이용 SF 드라마를 기획한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50주년이 되던 해인 2013년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드라마로 등재된다. 드라마계의 전설. 바로 그 유명한 ‘닥터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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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그는 누구인가?

물론 외국 드라마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뭐 대단한 건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닥터 후’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닥터 후’는 주인공 닥터가 ‘타디스’라는 공중전화 박스 형태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외계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드라마가 지금까지 롱런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죽음이 가까워지면 이전의 지식과 기억을 가진 채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재생성’되는 닥터의 특징 때문이다. ‘닥터 후’는 매 시즌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전 세계에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닥터 후’를 10배로 즐기는 방법

상상할 수도 없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닥터 후는 어디에서 촬영되는 것일까? 가장 유명한 촬영지인 영국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는 드라마 명성에 힘입어 2005년 닥터 후 전시관을 개관했고, 2012년 ‘닥터 후 익스피리언스’라는 단독 전시 체험관을 재개관했다. 카디프를 방문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이 체험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나의 드라마가 이 도시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카디프의 거리는 토요일임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바닷가 옆에 위치한 도시의 지리적 특성상 역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강풍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반면, 길게 이어진 거리, 아기자기한 작은 키의 건물, 봄을 맞이한 식물들 위로 비추는 따스한 햇볕은 매서운 찬 바람과는 상반되게 따뜻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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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어디에 있나 궁금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다 그곳에 모인 듯 거리, 상점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줄을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니 저 멀리 ‘닥터 후 익스피리언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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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건물의 ‘닥터 후 익스피리언스’는 총 세 단계로 체험, 전시, 기념품 샵으로 크게 나뉘는데, 관람객들은 매 30분과 정각에 시작하는 스태프 인솔에 따라 체험을 시작한다. 간단한 드라마 시놉시스 영상 시청과 타디스 체험을 한 후, 마지막에 세 개의 크리스탈을 찾으면 ‘체험’ 구간은 끝이 난다. 이후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하는 구간으로 넘어간다. 전시에서는 드라마 제작 과정과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의상과 모형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들의 창의성이 돋보였던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 모형들이다. 초반의 투박하고 촌스러웠던 모형들이 점점 꽤 그럴듯하게 발전해가는 모습이 흥미로웠고,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방식이 왠지 모르게 영국다웠다.


관람객들의 또 다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드라마 속 몬스터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해보는 코너이다. 드라마 안무가의 코칭 영상에 따라 거울을 보며 직접 따라 해보는 체험은 다소 신선했지만, 막상 큰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니 민망해졌다. 그때 몇 명의 관람객들이 안무가의 코칭 영상을 보며 마치 ‘누가 더 우스꽝스럽나’ 대결을 하듯 로봇처럼 걷기 시작했고, 이내 전시장 안은 유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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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활용법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닥터 후 익스피리언스’에서 내 이목을 끈 것은 무엇보다 기념품 샵이었다. 닥터 후 기념품들은 드라마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영국만큼이나 고전적이다. 영국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닥터 후 티팟, 티 코스터, 의상이 프린트된 엽서들, 음반, 매거진, 양복 커프스, 꽤 큰 규모의 타디스 모형 등은 이제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영국’ 드라마이기에 만날 수 있는 기념품들이다.


기념품 샵의 한쪽 코너는 서점을 연상 시키는 많은 종류의 닥터 후 관련 잡지와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일러스트 카툰, 스태프 코멘터리, 드라마 속 과학적 이론 등이 실린 ‘BBC 닥터 후 월간지’를 비롯하여 소위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퀴즈북, 스페셜 에디션, 역대 닥터 소개서 등 흥미로운 주제의 서적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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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많은 서적 중 아동용으로 보이는 얇은 두께의 책에는 닥터후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써보거나, 그의 새로운 친구를 상상해보는 등의 간단하면서도 상상력을 요하는 질문과 빈칸이 가득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어떻게 다양한 분야와 연계하고 활용하며, 각 연령층에 맞는 컨텐츠는 무엇일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닥터 후’ 스태프의 노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진부하고 낡은 것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반대로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닥터 후 익스피리언스’에서 보았듯 ‘닥터 후’ 또한 예외 없이 풋풋하고 서툴렀던 초창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이 있기까지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왔다는 걸 알기에 이 드라마가 조금 더 친근하고 특별한 걸지도 모르겠다.


*본 글은 2017년도에 도시문화컨텐츠 매거진 '어반폴리'에서 매월 1회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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