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의 프린지 페스티벌

영국도시문화기행 - 5월 브라이튼

by Elena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 두 눈은 빛을 담은 듯 반짝거리고, 입꼬리는 웃음을 머금은 듯 살짝 올라가 있다. 그들은 매사 자신감이 넘칠 뿐 아니라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미덕 또한 겸비하고 있다. 이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원리는 간단하지만, 어렵다. 모든 것을 비우고 마음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 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주말, 영국 최남단 도시 브라이튼에서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 가장 쉬운 행복한 예술가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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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옆 햇볕 아래 도시

브라이튼은 이제까지 보았던 다른 영국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드물게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인지 브라이튼에 도착했을 때, 도시가 마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금 옆으로 벗어난 양지’ 같았다. 영국 내에서 가장 ‘힙’하고, 행복한 도시로 소개되는 브라이튼은 문화와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성 소수자를 포용하는 ‘열린 도시’로 유명하다. 거리 위 상점들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로컬 상점들인 경우가 많은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다채로운 물감이 짜인 팔레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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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행복한 사람들

기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다소 복잡한 여정의 목적은 사실 브라이튼 프린지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영국 에든버러를 시작으로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문화 예술 축제로, 많은 창작자가 머리를 맞대어 대중들이 예술과 문화를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접하도록 돕는 일종의 ‘재능 기부’형 축제이다. 한 달 동안 누구나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퍼포먼스,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축제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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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에릭 칼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배고픈 애벌레’ 아동 연극이었다. 어린 시절, 책 속 애벌레의 색깔이 너무 예뻐 매일 밤 읽고 잠이 들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원작은 배고픈 애벌레가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으면서 나비로 진화한다는 간단한 내용이지만, 연극에서는 다양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야기, 배고픈 애벌레 이야기, 바닷속을 여행하는 해마 가족 이야기, 반딧불이가 친구를 찾는 여정을 그리는 이야기의 총 네 부분으로 각색되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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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보는 아동 연극에서 아쉽게도 어릴 때만큼 순수한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반대로 어렸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바로 화가, 애벌레, 해마, 반딧불이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표정과 몸짓이다. 진정으로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표정 속에는 행복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연극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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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즐겁게

공연이 끝나고 참여하고자 마음먹은 스크린 프린팅 워크숍까지 한 시간가량 여유가 있었다. 주변을 거닐다가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서 언뜻 보았던 갤러리 ‘포에닉스’가 보여 입구 계단을 올랐다.

포에닉스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레지던시 겸 갤러리로, 1층부터 4층까지는 120명가량의 예술가의 작업실로, 0층과 지하 공간은 워크숍과 이벤트 진행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문했던 날 운이 좋게도 일 년에 단 며칠간 입주 작가의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기간이었고, 각 층의 작업실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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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업실 중 햇볕이 잘 드는 방이 유독 눈에 띄었다. 따뜻한 빛이 스며든 아늑한 방의 모습에 강한 끌림을 느껴 문 앞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후 뒤에서 작업실의 주인인 듯 보이는 작가가 인사를 건네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방이 참 예뻐요. 저도 어렸을 때 이런 방에서 그림 그리는 게 꿈일 때가 있었는데, 참 부럽네요.’라는 본심을 고백해 버렸다. 나의 고백에 그는 웃으며 ‘당신도 가질 수 있어요. 포에닉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걸요. 비록 대부분이 다른 직업을 가지며 작업하고 있지만, 모두 이 일이 즐겁기 때문에 여기 머무는 거겠죠. 예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만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는 멋진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은 뒤 나는 ‘고마워요. 저도 그러길 바라요.’라는 대답을 끝으로 갤러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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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이 진행되던 ‘노스 스타 프린트메이커 스튜디오’는 과거 버려진 공간을 시에서 구입하여 예술가들에게 대여해주는 곳이다. 공간 자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벽마다 붙어있는 작업물들이 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워크샵에서는 스크린 프린팅 디자이너가 프린팅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 번 행복을 느꼈다. ‘아 이 사람. 이 일을 정말 즐기는 구나.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브라이튼은 참으로 행복한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도시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배고픈 애벌레의 연기자로, 한 작은 아틀리에의 화가로, 허름한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행복한 별이다.


*본 글은 2017년도에 도시문화컨텐츠 매거진 '어반폴리'에서 매월 1회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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