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톨의 자메이카 스튜디오

영국도시문화기행 - 6월 브리스톨

by Elena

영국에 오기 몇 달 전. 잠깐 들린 서점에서 표지에 ‘영국 히피들이 궁금하다면, 이 도시로’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도시의 이름은 브리스톨. 도시에 대해 에디터는 이렇게 표현했다. ‘브리스톨 – 이 도시에 오기 전에 자전거 타는 법을 꼭 배워 놓을 것. 단언컨대 영국에서 가장 많은 히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지 못하지만,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업들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일명 ‘힙스터들의 성지’로 불리는 매력적인 도시를 가지 않는 것은 나의 손해임이 분명했다.


거리 및 풍경 (7).JPG


홍대가 도시가 된다면

브리스톨은 알만한 사람은 아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출생지이자 그가 주로 활동했던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를 찾는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허물어져가는 벽과 건물들 위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그래피티에서 느낄 수 있는 길들여 지지 않은 자유로운 멋을 찾아 온다.

역에서부터 시내까지 걸어나오며 마주친 히피들만 해도 영국의 그 어떤 도시 사람들보다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멋쟁이들이었다. 껄렁한 걸음걸이의 히피들을 보고 있자니 뱅크시가 이 도시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 도시가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홍대가 ‘아메리카노’라면 브리스톨은 ‘에스프레소’라고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느껴질 만큼 도시는 ‘자유’라는 단어에 있어서 만큼은 그 향기가 진하고 깊다.


센터스페이스 갤러리 (1).JPG



히피들이 문화예술 즐기는 방법

영국에 오기 전까지 줄곧 한국 토박이로 살았던 나에게 문화 예술을 즐기는 방법이란 남들과 별 다르지 않은 것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땐 전시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고 싶을 땐 뮤직 페스티벌에 가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문화는 일상의 도피처 같은 것이었고,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약간의 경계랄까. 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너머의 ‘어떤 것’에 대해 목말라 있었다. 한국인에게 문화와 예술은 얼핏 보기에 대중화되어 있는 멋진 취미 같지만, 사실 그 속은 너무 어렵고 대단해서 소수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브리스톨의 문화는 접근이 참 쉽다. 이를테면 집 앞 카페 벽에 걸린 신진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한다거나, 예술에 대한 토론이 그리운 날이면 무작정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예술에 대해, 그들의 작업에 대해 논할 수도 있다. 정말 별 것 아닌 쉬운 일들처럼 보이지만, 결코 혼자서 단시간에 형성할 수 없는 커뮤니티. 도시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만들어 낸 문화예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스파이크 아일랜드 (1).JPG



조금 특별한 카페들

그들의 삶에 어떻게 문화가 녹아 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허름한 동네 카페에서부터 시작된다. 시티 센터에 위치한 ‘The Arts House’ 카페 입구에는 블랙보드에 ‘BASEMENT EVENTS’라고 쓰여진 입간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말 그대로 매일 저녁 6시, 8시에 카페 지하에서 열리는 문화 공연 스케줄이다. 영화, 축제, 코미디 공연까지 종류도 참 다양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 하얀 색 카드보드 프레임의 그림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는데, 너저분한 카페 인테리어에 ‘설마 판매 하는 그림이 아니겠지’하는 의문점이 생기면서도 그림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가격과 제목을 보니 그 투박함이 참 웃기면서도 정감이 갔다.

바로 옆에 예술 잡지를 파는 서점, ‘Here Gallery’도 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홈페이지에서는 진행 중인 전시라며 작가 설명과 이미지가 나름대로 근사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내부 이곳 저곳 걸린 대략 10점 정도의 그림이 전부였다. 이곳의 ‘문화’ 와 내가 가진 정의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갤러리 카페 (6).JPG


해밀턴 하우스와 자메이카 스튜디오

소개가 늦었지만, 사실 브리스톨에 가기로 결심한 가장 큰 목적은 ‘자메이카 스트리트 오픈 스튜디오’에 가기 위함이었다. 브라이튼에서 ‘오픈 스튜디오’에 대한 인상이 꽤 좋기도 했고, 자메이카라는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서인도 제도의 레게, 화려한 색채, 자유스러움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스튜디오는 자메이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거리 이름 ‘자메이카’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오픈 스튜디오를 기획했던 계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 문화 예술 비영리 커뮤니티인 Coexist의 해밀턴 스튜디오 건물을 건물주로부터 매입하기 위한 기금 마련이 궁극적 목적이었던 것. 도시 중심에 위치한 이 스튜디오는 5층 높이의 건물 전체에 아트, 춤, 테라피, 음악, 요가 등의 워크샵은 물론 작가들의 작업실,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의 아트 허브로 여겨지고 있었다. 모금 운동 차원에서 스튜디오 아티스트들은 3층에서 작품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유롭게 작품에 대해 가격을 매길 수 있던 종이 위에 가격은 꾸준히 갱신되고 있었다.


자메이카 스트리트 아트 오픈 스튜디오 (2).JPG


자메이카 스트리트 아트 오픈 스튜디오 (16).JPG


해밀턴 하우스 (2).JPG


문화와 예술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과 분리시키는 것. 작은 인식의 차이는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서가 아닌 나와 우리에 의해 만들어가는 브리스톨의 문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브리스톨만의 것이었다.


*본 글은 2017년도에 도시문화컨텐츠 매거진 '어반폴리'에서 매월 1회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keyword
이전 07화브라이튼의 프린지 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