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의 첫 날밤

DAY1. 늦은 저녁. 나홀로 여행.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다.

by Elena

2017년 4월 12일 수요일.

어제 저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인해 늦은 저녁 스키폴 공항에 도착한 나는 캄캄한 하늘 아래 낯선 환경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반대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관문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드는 묘한 쾌감은 일주일의 짧고도 긴 여행의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만난 독일 에라스무스인 중국인 친구를 만났다.

숙소 지하 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새벽 한시가 되었고, 내일 아침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뒤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전 다시 만나 시내 중심을 돌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들을 함께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같이 있다가 혼자가 되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다. 이번 여행이 생각지도 못한 외로운 여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오후 3시. 그녀의 터키 친구를 중앙역으로 함께 마중 나가기로 했다. 터키 친구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여서 나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자신이 여태껏 보았던 한국 드라마를 신나게 나열해댔다. 신나게 한국 드라마에 이야기 하는 사이 오늘 아침 떠났던 숙소에 도착했고, 맡겨 놓았던 캐리어를 찾았다. 그들은 숙소에서 마저 여행 계획을 짜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점심을 함께 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 숙소를 검색해보니 걸어서 약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라던가 '40분 동안 이 큰 캐리어를 끌고 걸어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 보다는, '이 울퉁불퉁하고 복잡한 거리에 몸 반만한 캐리어가 잘 견뎌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 숙소에 도착하니 다섯시가 채 안되는 시간이었다. 숙소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빈티지한 느낌을 넘어선 매우 허름한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곳이었다. 4인실 방에는 국적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이국적인 생김새의 투숙객이 고단한 하루를 보냈는지 꽤 이른 시간임에도 침대에 누워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짐 정리 후 필요한 것만 가방에 챙겨 조금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몇 주 전 신청해놓은 주변 갤러리 가이드 투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20분이 걸린다는 구글맵의 예상시간과는 달리 그려진 경로는 구불구불한 것이 도저히 20분안에는 도착할 수 없는 거리로 보였다. 하지만, 구글의 예상시간은 나에게 꽤 신용이 높았기 때문에 가는 길의 풍경과 거리의 햇살과 여유로운 시간을 충실히 음미하며 사뿐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KakaoTalk_20170413_204811519.jpg 셀 수 없이 많은 암스테르담 운하는 매번 감탄을 자아낸다.


몇 번의 운하를 지나 작은 갤러리들과 빈티지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니 저 멀리 빨간 사인으로 표시된 FOAM이 보였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사진 작가를 발굴하고, 그를 소개하는 전시를 주로 열고 있는 갤러리 FOAM은 나름 아는 사람만 아는 예술계의 히든 핫 플레이스 같았다.


KakaoTalk_20170413_212024491.jpg FOAM에서 발간하는 각종 잡지


가이드 투어 시간까지 한시간 남짓 안되는 시간이 남아서 갤러리 지하에 위치한 FOAM CAFE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으며 지인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지금 보내면 그 사람이 받을 즈음에는 내 이야기는 이미 나에게 몇 주전의 추억이 되어있을 생각을 하니 그 순간 마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네덜란드 농부가 만든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두 조각을 먹고 남은 커피 몇 모금 마저 다 마시니 얼추 투어 시간이 되었다. 투어는 막 시작되고 있었고, 네덜란드어와 영어 팀이 나눠져서 전시를 돌았다. 관람객들은 약 13-14명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고, 그들의 다양한 국적에 한 번더 놀랐다.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한 명있었는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미루어 보아 외국에서 오래 산 듯 하다.) 투어는 도슨트가 질문하고 관람객이 대답하는 형식의 참여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도슨트는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작업 취지라던가 작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전시를 관람했고, 그녀의 시도는 꽤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Conceptual한 작업이 많았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던 프랑스 사진 작가의 작업 및 해설 번역문은 곧 다른 매거진의 글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KakaoTalk_20170413_204808571.jpg 저녁 노을이 지는 암스테르담


관람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터벅터벅 걸었다. 해가 이미 저물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은 먼 공원 사잇길로 돌아갔다. 숙소 앞 아직 영업중인 상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산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를 나서기 전 보았던 의문의 투숙객 그녀가 아직 자고 있지 않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멕시코에서 온 그녀는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이스터 방학 중에 혼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왔다고 했다.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여행할 거라고 말을 하던 그녀의 말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질문하는 건 대부분 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녀의 표정에서 조금은 피곤함이 느껴졌기에 튀어 나오려는 질문을 꾹 참았다. 그리고 지금은 허름한 숙소 침대에 누워 글을 쓰고 있다. 또 한 번 세상의 반대편에서 살고있던 누군가를 만나니, 내가 한 고민이 한 톨의 먼지보다 작은 것이었고, 나라는 존재 또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 한번 체감했다.내가 하는 그 모든 것이 이 세상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 혼자하는 여행을 즐겨볼 생각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