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노스케 이야기와 윤석철 트리오
초등학생 6학년 때, 처음 갔던 일본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새벽 일찍 숙소를 나서 피부에 와닿던 차갑고도 맑은 공기의 감촉과 휴지 한 조각, 사람 한 명 없이 깨끗하고도 고요했던 거리.
차분하고 고요한 맑고 따뜻한 느낌의 일본문화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다. 특유의 감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문체를 그래서 소설을 읽기전에 평소와는 다른, 그 책의 감성을 한층 업시켜줄 환경을 조성하곤 한다.
시간대는 아주 여유롭고 조용한 평일 오전 11시나 오후 1시 정도. 책을 읽다가 자리를 뜨고 싶지 않기 때문에 홍차 물을 끓인다. 몇 분뒤 달그락 거리는 티폿의 물을 작은 티컵에 따른다. 책을 읽을 준비를 마치면 채광이 잘되는 거실 쇼파에 앉아 그제서야 책을 펼쳐든다.
개인적으로 글을 읽을 때 풍경, 감정, 상황의 묘사의 독창성과 심미성에서 희열과 감동을 느끼는데 대체적으로 일본문학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수 많은 일본작가들이 있지만 온다리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책 요노스케 이야기의 저자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한다. 사실 위의 다섯 작가는 일본 문학계에서 매우 유명작가들로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라고 언급되어지는 것이 그다지 놀라거나 새롭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설을 읽는다면 그들의 소설이 왜 그토록 사랑받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을 수 밖에 없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 수 밖에 없다.
소개하고 싶은 일본소설은 많지만 몇 년 전 읽은 소설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딱히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아는게 있다면 그의 소설인 「일요일들」, 「퍼레이드」,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악인」 등의 책을 썼다는 것 정도. (언젠가 읽어봤던 것 같지만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되지 않는 걸로 보아 꽤 오래전에 읽었거나 혹은 읽으려고 시도는 하였으나 마무리 짓지 못한 책일 것이다.) 하지만, 요노스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으며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 부족함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1987년, 18살 주인공 요노스케가 도쿄로 대학진학을 하게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마치 실제 우리들의 삶처럼 주인공은 대학교에 다니고 동아리에 들고 시험을 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반복적인 생활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개연성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글 초반에 스스로를 "기껏해야 자기 소개할 때 할 말이 요노스케의 유래 정도뿐" 으로 설명하던 본인을 타인이 보아도 '청춘을 만끽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바꾸어 간다. 소설은 구조는 앞 부분에서 과거 이야기를, 뒷 부분에서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 기억의 틈을 채워 맞물리는 구조로 서술하며 신선한 재미를 준다.
소설에서 느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무리 평범하고 보잘것 없다고
느껴도 누군가의 추억 속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요노스케는 20년 뒤 그의 주변 사람들의 기억의 일부가 되어 회상되어지면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둘째는 살아가며 겪는 아주 작은 경험에
의해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기도 하며, 그것은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불필요한 인생의 경험은 없다는 것.
완전히 요노스케의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함께했던 일들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 것에서 한 사람이 타인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의 크기와 삶의 우연적인 계기들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에 책을 들고 집 주변에 있는 카페에 갔다. 거의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접어들 무렵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윤석철 트리오의 「Three Points of View」. 언젠가 김창완씨 라디오에서 그의 라이브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심오한 곡 제목의 뜻을 사랑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이라고 소개했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 누군가의 추억 속에 자리잡은 평범하지만 그리운 인물에 대해 그린 이야기로, 요노스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으로 빗대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있었다해도 우리는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을.
도입부의 피아노 연주와 그에 박자감을 더하는 드럼 연주의 선율은 마치 벚꽃이 흩날리는 4월. 대학생으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요노스케의 청춘을 떠올리게 했고, 그의 찬란한 인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중반부 즈음 조용해지는 분위기로 바뀌며 변주되는 부분은 이야기 속 과거에서 현재로 시점이 바뀌며 친구들이 요노스케와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입학식에 두 명의 친구를 만났고, 함께 삼바 동아리에 들어갔다. 고향 친구를 만났던 카페에서 첫 사랑을 만났고,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룸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했다. 운전면허학원에서 만난 가토와 그의 소개로 우연히 만난 쇼코. 그의 시골집에서 함께 여름방학을 보냈던 기억.
후반부에 요노스케는 지하철에서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그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기 보다 오히려 멋지고 빛난 인생을 살았다는 만족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 그를 회상하는 그의 주변인물들 덕분이다. 그의 육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기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으니.
*윤석철 트리오의 'Three Points of View' 온 스테이지 라이브 무대가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에서
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당신 기억 속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느껴졌던 사람이 있나요?